避暑1(피서)
                                    叙光 張喜久

    제방 둑 푸른 그늘 촌가에 휘날리고
    중복에 남풍 불어 날마다 빗겨가네
    한가한 시간을 틈내 시흥 한줌 단비 두줌.
    綠揚堤畔近村家   中伏南風每日斜
    녹양제반근촌가   중복남풍매일사
    耘者休時過澍雨   不勝詩興酒盃加
    운자휴시과주우   불승시흥주배가

푸른 그늘 제방 근처 중복 남풍 지나가고, 
한가하게 단비 지나 시흥 절로 나는구나

 

무더위를 피하여 시원한 곳을 찾는 심회는 각자 다르다. 요즈음 수도권에 사는 나이 연만한 사람들은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피서를 즐긴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청량리역에서 전철을 타면 천안역에 도착하여 역 광장 등 그늘 밑을 찾아 점심요기를 하면서 서울막걸리 한 병이면 충분하단다. 그래저래 지인들과 잡담을 하다가 다시 전철을 타면 하루해를 넘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시인은 푸른 그늘이 제방 둑 근처의 촌가에 휘날리고, 중복에 남풍이 불어 매일같이 빗겨갔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시흥을 더는 참지 못해 술잔을 더하고 싶다오(避暑)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푸른 그늘이 제방 둑 근처의 촌가에 휘날리고 / 중복에 남풍이 불어 매일같이 빗겨가는구나 // 김매는 사람들은 한가한 시간에 단비가 지나가고 / 시흥을 더는 참지 못해 술잔을 더하고 싶다오]라는 시상이다. 평설은 감상과 같지 않아 시인과 독자의 교량적 역할로 정리한다. ‘푸른 그늘 제방 근처 중복 남풍 지나가고, 한가하게 단비 지나 시흥 절로 나는구나’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무더위를 피하면서]로 의역된다. 모진 추위인 ‘혹한(酷寒)’이 있는가 하면, 참기 어려운 더위인 혹서(酷暑)도 있다. 더위는 따뜻한 방안을 찾으면 되지만 혹서는 더위를 피하여 물가나 나무 그늘을 찾는다. 더위를 피한다는 뜻으로 흔히 ‘피서’라고 한다. 피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부채를 부치는 방법이 있고, 냉면이나 찬 음식 혹은 얼음과자 등을 먹는 방법이 있다. 제 각각 더위를 피하는 방법의 모색에 분주한단다.
그렇지만 시인은 촌가가 있는 그리운 고향을 찾았음이 사상의 얼개에 잘 포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푸른 그늘이 제방 둑 근처 촌가에서 어서 오라는 듯이 휘날리고, 중복 무렵에 남풍이 불어 매일같이 더위가 빗겨간다고 했다. 더위는 내게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고 그렇게 빗겨가는 모양새를 보이지만, 내가 더위를 한꺼번에 피해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시인의 시적인 착상은 그렇게 보였음을 알게 한다.
화자는 농부들이 땀을 흘리는 모습에서 덥다는 생각을 잠재우면서 시원한 막걸리 한 잔에 더위를 삭히고 싶은 강한 충동감을 느끼게 했으리라. 김매는 사람들은 한가한 시간에 우두둑 단비라도 지나가고 있는데 쏟아지는 시흥(詩興)만은 참지 못해 술잔을 더하고 싶다고 했다. 더위를 피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구상해 낸 것이다.

【한자와 어구
綠揚: 푸른 그늘이 휘날린다. 堤畔: 제방 가. 近村家: 촌가의 근처. 中伏: 중복. 중복 무렵. 南風: 남풍. 每日: 매일. 斜: 빗기다. // 耘者: 밭을 가는 사람. 休時: 쉬는 시간. 過澍雨: 소나기가 지나다. 不勝: 견디지 못하다. 詩興: 시흥. 시적인 흥취. 酒盃: 술잔. 加: 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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