蟬聲(선성)
                                    叙光 張喜久

    처서가 들어서자 매미소리 뚝 그치고
    온 대지 가을바람 청량한 기운이네
    괴목에 기대어 서서 함께 하리 시 읊고.
    處暑纔過已曉明   窓前槐木聽蟬鳴
    처서재과이효명   창전괴목청선명
    金風大地淸凉起   題詠吾儕共酒觥
    금풍대지청량기   제영오제공주굉

처서 지나 새벽 밝고 매미소리 들려오네, 
가을바람 청량 기운 시를 읊고 한잔 하며

 

늦여름이 되면 덕수궁을 걷기가 무섭단다(?). 매미의 극성스런 소리 때문이다. 물론 성정이 급한 사람의 볼멘소리다. 모기도 한 때라 했듯이 매미도 한 때인 것을 그것을 못참아 푸념을 부린다. 어느 시인의 시 한 구절이다. [동구 밖 정자나무 / 신비롭고 환상적인 멜로디 / 한살이 서막을 알리는 애창곡이다 // 긴 터널의 탈피 / 신방을 꾸미는 보금자리 / 수놈이 암놈을 부르는 프로포즈…] 시인은 온 대지가 가을바람이 불어 청량한 기운이 일고 / 우리들은 시를 읊고 술 한 잔 들며 함께 하리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창문 앞 괴목에서 매미소리가 외롭게 들려오구나(蟬聲)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처서가 겨우 지나가고 새벽은 점차 밝아 오는데 / 창문 앞 괴목에서 매미소리가 들려오는구나 // 온 대지가 가을바람이 불어 청량한 기운이 일고 / 우리들은 시를 읊고 술 한 잔 들며 함께 하리]라는 시상이다. 상상력은 시의 몸통과 같다. 시인의 맑고 고운 상상력을 들춘다. ‘처서 지나 새벽 밝고 매미소리 들려오네, 가을바람 청량 기운 시를 읊고 한잔 하며’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저리도 시끄러운 매미 소리]로 의역된다. 더위가 마지막을 장식할 처서(處暑) 무렵이 되면 매미가 극성을 부린다. 굳이 덕수궁 돌담길을 가지 않더라도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매미 소리가 신기하기 보다는 극성을 부리는 꼴을 보면 ‘이제 더위까지 몰고 갈 테니 내게 무슨 선물을 주겠느냐?’는 식으로 푸념이라도 하는 것 같다. 매미의 번식 기간이 7년 내지는 17년을 버티는 인내력이 이를 상징하고 있다고 하지는 않을는지.
시인은 말복이 지나기가 바쁘게 하나씩 모습을 보이다가 처서 무렵엔 극성을 부린다는 시상의 얼게를 꼬기작거린다. 처서가 겨우 지나고 새벽이 훤하게 밝아 오는데, 창 앞 괴목 나무에서 매미소리 드세게 들려온다고 했다. 시골 느티나무에서 들을 수 있는 매미 소리가 자연환경이 좋아졌음을 핑계 삼아 도심을 휘젓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화자는 고향 마을에서나 들었던 매미 소리에 추억을 한 아름 안고 가을바람의 청량함을 떠올리고 있다. 가을을 알리는 소리다. 온 대지에 가을바람 불어 청량한 기운이 일어나는데 우리들은 시를 읊고 술 한 잔을 들면서 함께 하리라는 생각에 젖는다. 극성을 부리는 매미 소리보다는 뜨거운 여름신인 적제(赤帝)가 서서히 물러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한자와 어구】
處暑: 처서. 纔過: 겨우 지나다. 已曉明: 이미 새벽이 밝아 오다. 窓前: 창 앞. 槐木: 괴목 나무. ‘홰나무’라고도 함. 聽: 들리다. 蟬鳴: 매미 울음소리. // 金風: 가을바람. 大地: 대지. 淸凉起: 시원함이 일어나다. 題詠: 시를 읊다. 吾儕: 우리들. 共酒觥: 함께 술잔을 기울다. ‘부라보’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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