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豐(등풍)                                 
   叙光 張喜久

    청결한 해동하늘 들판은 풍년들고
    일기도 화창하고 가을걷이 한창일세
    도처엔 농부들 노래 흥겨워서 더덩실.
    捲雲淸潔海東霄   此際登豐四野邀
    권운청결해동소   차제등풍사야요
    日氣連和秋收裏   邇遐到處穡夫謠
    일기연화추수리   이하도처색부요

구름 걷힌 해동하늘 모든 들판 풍년드네, 
일기 화창 가을걷이 도처 농부 노래하며

우리 선현들은 가을에 묵직하게 드는 풍년을 두고 가색등풍(稼穡登豐), 오곡등풍(五穀登豐)으로 불리면서 풍년을 찬양하는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면서 가을을 마으껏 찬미했다. 그렇게 보면 가을은 마냥 우리에게 차가운 겨울을 지내는 마음과 따뜻한 정경이 아니었나 싶다. 가을은 그랬고, 풍년도 늘 그랬다. 농부들의 일손은 바빠진다. 가을걷이 때문이다. 벼를 베어야겠고, 보리씨를 뿌리기에 바쁘다. 시인은 구름 걷혀 청결하기 그지없는 해동 하늘에, 이즈음 풍년이 든 모든 들판을 맞이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일기가 화창하게 이어지면서 가을걷이를 하네(登豐)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구름이 걷혀 청결하기 그지없는 해동 하늘에 / 이즈음에 풍년이 든 모든 들판을 맞이했었네 // 일기가 이처럼 화창하게 이어지면서 가을걷이를 하는데 / 멀고 가까운 도처에서 농부들 노래 이어지네]라는 시상이다. ‘화자’가 떠받친 반전은 시의 격을 높이는 큰 요채가 되고 있다. ‘구름 걷힌 해동하늘 모든 들판 풍년드네, 일기 화창 가을걷이 도처 농부 노래하며’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좋구나! 풍년이 들었구나]로 의역된다. 농부들의 가을걷이는 벼를 수확하고 보리를 뿌리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는다. 주렁주렁 열리는 호박이며 고구마도 다복하게 캐야한다. 빽빽하게 달린 옥수수도 거둬들여야 하고, 지붕 위에 열린 박도 따서 잘 말려 사용해야 한다.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불을 땔 수 있도록 땔감도 준비해야 한다. 등풍(登豐)과 함께 거둬들여야 하는 우리네 가을의 진풍경들이다.
시인은 선경의 시상은 가을걷이에 신경을 쓰는 농부의 바쁜 마음을 달래려고 했음을 보인다. 구름이 걷혀서 청결하기 그지없는 해동 하늘에, 요즈음에는 풍년이 든 모든 들판을 맞이했다고 했다. 바쁜 일손은 좀처럼 가셔지지 않고 논과 밭을 향해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다. 오곡백과가 풍년이 들어 지게로 지고 돌아가기엔 너무 무거워 보였음도 시상의 그늘 속에 숨이 있다.
화자는 이제 후정의 가슴 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그 무엇이 있어 농부들을 바라보는 마음을 오히려 초라하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일기가 화하게 이어지면서 가을걷이를 하는 가운데, 멀고 가까운 도처에서 농부들 노래 소리가 이어진다고 했다. 올 가을엔 과년한 딸을 꼭 시집보려했는데, 또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어미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풍년과 딸 시집보내는 것과는 운대가 맞이 않는 모양이다.
【한자와 어구
捲雲: 구름이 걷히다. 淸潔: 청결하다. 海東霄: 우리니라의 하늘이다. 此際: 이 때에, 登豐: 풍년이 들다. 四野邀: 모든 들판을 맞이하다. // 日氣: 일기. 連和: 화창하게 이어지다. 秋收裏: 추수하는 가운데. 邇遐: 가깝고 멀다. 到處: 여러 곳에. 穡夫謠: 농부들 노래 이어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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