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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해전의 역사적 조명(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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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27  19: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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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8일 이순신은 노량으로의 출항을 진린 도독에게 청하였으나, 진 도독은 강경하게 반대했다. 진린은 위험하기만 했지 아무런 이득이 없는 남의 싸움에 애당초 끼어들기 싫었다.
이순신이 계속 청하였으나, 진린은 묵묵부답으로 일괄했지만, 막상 이순신이 출동을 강행하려 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마음을 돌려 같이 출항하기로 결정하고 진린은 함대 사령관, 좌선봉 등자룡 부총병, 우선봉은 이순신이 맡기로 하였다.

이순신의 결연한 의지에 감동한 진린은 드디어 조‧명수군 합동 작전으로 출동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적을 응징할 마지막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날 밤 자경(밤 11시~새벽1시)이 되자, 이순신은 혼자 갑판에 올라 문득 대야에 깨끗한 물을 떠와 손을 씻고,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은 다음 하늘과 신령에 빌기를 “원수를 무찌른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하늘이시여! 천인공로할 죄를 지은 적들을 꼭 무찌르게 해주옵소서” 하고 빌기를 마쳤다. 
일본으로 도망치려는 왜군을 섬멸하는 것이 이순신에게 남은 마지막 복수의 기회였다. 왜적을 무찌르게 해달라는 이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죽어도 좋았다.
기도가 끝 날 즈음 하늘의 큰 장수별 하나가 떨어져 바다에 내렸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모두 놀라면서 이상하게 여겼다.
기도를 마친 이순신은 스스로 용감한 군사들을 거느리고 11월 18일 밤 10시경에 묘도에서 출발하여 앞장서서 동쪽의 노량을 향해 전진했다.
조‧명 연합수군이 노량수로 서단에 먼저 도착한 것은 당시 북서풍이 강하게 부는 겨울철을 맞이하여 풍상쪽을 선점하므로써 화공전을 펼치는데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병정들에게는 떠들지 못하도록 입에 하무를 물리고 북을 뉘어서 조용히 진군했다. 조‧명 연합함대는 좌우로 편을 갈라 진군해 나갔다. 이것은 적이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이에 급습하여 공격하기 위해서이다. 조‧명 연합함대 규모는 조선수군 군선수는 판옥선 60여척에 협선, 포작선 등을 합해 총 100여척 규모이었고, 수군 수는 8000여명, 명수군 군선수는 200~300여척에 수군 수는 1만 3천여 명이었다.
조‧명 연합함대의 총사령관은 도독 진린이었으며 좌선봉은 등자룡, 우선봉은 이순신이 맡고 최대한 은폐하면서, 조용히 느린 속도로 이동하였다.
북서풍의 거친 바람소리 때문에 격군들의 노 젓는 소리는 멀리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순신은 포구와 섬들마다 복병을 배치하여 왜교성의 적을 대비해가며 진군했다. 오늘 밤에는 화공작전이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생각한 이순신은 불화살과 장작, 섶 등을 많이 준비 하도록 하였다.
조‧명 연합함대는 자정 쯤 노량바다 좌측 부근에 명수군은 곤양 죽도 북쪽에, 조선수군은 남해도의 관음포 앞바다에 포진하였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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