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면서 지역과 함께 발전해 가자는 ‘With 포스코’다. 기업이 지역사회 시민의 일원으로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기업시민’이라는 용어도 즐겨 사용한다. 지난 30년간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광양의 지역경제와 발전을 주도해왔다. 물론 그 이면에는 삶의 터전을 내준 지역민들의 희생과 개발에 필수적으로 뒤따르는 환경피해 역시 지역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기업이 해당 지역사회에 아무리 지대한 공헌을 한다 하더라도 기업의 토대는 지역이 될 수 밖에 없고, 지역과 기업은 유리될 수 없다. 이런 자명한 논리 앞에 ‘기업시민’이라는 용어는 왠지 낯설게 다가온다. 용어를 어떻게 사용하든 기업도 지역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삶의 표준을 바꾸고 있다. 코로나19가 진정되더라도 우리의 삶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들이 나오고 있다. 세계 각국이 국경을 봉쇄하고, 도시를 봉쇄하면서 글로벌 경제위기도 심화되고 있다. K방역이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지방정부에 이어 중앙정부 차원에서 긴급재난생활비를 지원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의 삶은 팍팍해지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위기는 소상공인들은 물론 기업들에게도 위기다. 광양경제의 두 축을 이루는 철강과 항만산업 역시 코로나19의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했다. 지역 대표기업인 광양제철소가 감산에 들어가고, 광양항은 물동량이 뚝뚝 떨어지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다. 광양경제를 철강과 항만으로 이야기하지만, 체감경제는 철강이 9할 이상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다보니 포스코의 위기는 지역경제의 위기로 직결된다. 포스코가 허리띠를 졸라매면 지역 영세 소상공인들은 목이 졸리는 구조임을 부인할 수 없다.

보수정권 시절, 친기업정책이라며 대기업 위주의 정책들을 펼치며 정책 책임자들이 펼친 논리는 이른바 낙수효과였다. 대기업에 돈이 고이면 그 돈이 중소기업으로, 소상공인으로, 가계로 흘러들어갈 것이라는 논리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기대는 너무 순진하다는 것이 금방 입증됐다. 정부로부터 온갖 특혜를 받으며 덩치를 키운 대기업들은 번 돈을 투자해 낙숫물이 흐르듯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들에게 흘려보내지 않고 자신들의 금고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결국 있는 자들에게만 혜택이 가는 어쩌구니없는 정책의 피해자들은 갖지 못한 소시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코로나19로 누구나 힘든 현재 절실한 것은 여유가 있는 대기업의 과감한 투자로 인한 낙수효과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기업의 극한적인 원가절감은 기업의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일 수 있지만, 이는 결국 그와 연계된 수많은 중소기업과 영세 납품업자들의 숨통을 옥죄는 것에 다름 아니다. 철강경기가 언제 회복될지 모를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 최근 포스코에 납품을 하는 중소업체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고 있다. 원가절감을 이유로 포스코가 재고 줄이기에 나서면서 아예 발주가 없어지거나 필수자재에 대한 발주가 있더라도 물량이 현저하게 줄고 있다는 것. 물건을 파는 사람 입장에서 필요없는 물건을 더 사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비상한 시국에 대한 대처법 역시 비상해야 한다. 당장의 경영성과를 위해 연관된 업체들의 생태계가 말살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내부를 다잡는 것이 즉효는 있을지 모르지만, 엄청난 사회적 비용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위축된 지역경기를 소생시킬 수 있는 것은 과감한 투자다. 이미 공공부문에서는 추경을 연속해 편성하면서 안간 힘을 쓰고 있다. 기업이 지역사회 ‘기업시민’으로 역할을 하는 것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푼돈을 지원하는 것보다 기업활동을 통해 지역경제에 혈액을 공급하는 일이다. 위기극복을 위한 극한의 원가절감노력을 이해하지만, 그 결과가 지역경제를 옥죄는 것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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