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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해전의 역사적 조명(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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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18  09: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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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 정 식(관세사) 광 양 관 세 사 무 소 대표 원산지관리사 / 물류관리사

최선봉으로 나선 이순신은 최근접전 속에서도 손수 북을 치며 전투를 독려하였다. 그러나 적군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 격전 중에 가리포 첨사 이영남이 적탄에 맞아 사망하고 낙안 군수 방덕룡 등 10여명의 조선장군들도 적탄을 맞아 운명하였다. 근접전으로 치르는 피의 전투를 견디지 못한 일본 선봉함이 느슨해진 틈을 뚫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해남현감 유형이 대장선으로 다가와 소리쳤다. 

“통제사 나리, 우리들 뒤쪽에 왜적들 지원군이 오고 있습니다.” 
“우리 전선을 둘로 나누어라. 관음포에 있는 적선을 내게 맡기고 유현감은 뒤에서 공격하는 적선을 상대하라.” 
그 때 해남현감 유형은 조총 여섯 발을 맞고 옆으로 거꾸러지며 의식을 잃었다. 
“통제사 나리, 적탄이 쏟아집니다. 북치는 자리가 위험합니다.” 
안골포 만호 우수가 이순신을 향해 소리치며 다가왔다. 
그래도 이순신은 도망가는 왜군선단을 추격하면서 독전하고 있는데, 같은 배에 타고 있던 송희립이 조총에 맞아 쓰러졌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이순신이 전군에 더욱 분발하라는 북을 치며 독전하던 그 때 근접거리에서 적의 포병이 배꼬리에 엎드렸다가 쏜 조총탄환이 이순신의 왼쪽 겨드랑이를 뚫고 가슴부위에 박혔다. 
이순신은 총알에 맞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이순신은 방패를 가리고 장막 안으로 모셔졌다. 
이순신은 큰아들 회와 조카 완에게 “전투가 한창 급하니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라는 유명한 유언을 남기고 순국 하셨다. 
향년 54세 였으며, 이른 아침 오전 9시경이었다. 
죽음 앞에서도 오로지 싸움의 결말을 걱정하는 이순신의 유명을 받은 장자 회는 늘 아버지가 잡고 있던 북채를 잡고 북을 두드리고, 조카 완은 계속 독전기를 휘두르면서 평소와 다름없는 지휘체계를 유지하며 돌진하였다. 
이 때 종 김이 만이 이순신의 죽음을 알고, 조총을 맞고 실신 중이던 송희립도 이순신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은 곡절 많은 생을 마감하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성웅이 되어 승천하셨다. 
노량해전은 그 모든 전투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전투였으며, 양쪽이 사생결단으로 달려든 전쟁으로, 적개심이 불탄 그가 대장선 위에서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북을 두드리며 맹렬히 싸우니 적에 눈에 쉽게 띄었을 것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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