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 출신들의 모임…군에서 익힌 기술 지역사회 위해 활용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이 되면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의 업적을 다시 한 번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은 지난날에 있었던 과거의 업적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 국가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바치며 희생을 서슴지 않았던 이들은 여전히 보훈단체라는 이름하에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사회공헌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수임무유공자회는 세월호 침몰사고 현장에서 인명구조에 나서는 등 국가와 지역사회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오면서 사회의 귀감이 되어왔다. 특수임무유공자회는 2008년 법정단체로 출범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광양지회도 이때부터 지역을 위한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해 왔다. 조성래 광양지회장을 만나 이들만의 특별한 이야기 들어봤다.

■ 보상받지 못한 희생
특수임무유공자회는 1948년 8월 15일부터 2002년 12월 31일 사이에 대통령이 정하는 군 첩보부대에 소속되어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관련해 국가를 위해 희생한 자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특수임무 유공자의 명예를 선양하고 국민의 애국심 함양과 국가발전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북파공작원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 할거에요. 한마디로 국가를 위해 목숨까지 희생하는 각오로 임무를 수행해 왔었는데 특수임무유공자회가 법정단체로 출범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몰랐고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어요.”
심지어 이들은 진실의 왜곡도 마다한 채 세상 밖에 드러낼 수 없는 암울한 시기를 인내로 버티며 견디어 왔다. 그러다가 지난 2007년 몇몇 분들이 국가를 위해 특수임무를 수행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면서 명예를 회복하게 됐고, 그 이듬해에 공식 법정단체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군에 처음 갔을 때는 이 일이 어떤 건지도 모르고 갔어요. 단지 특수부대라는 이야기만 듣고 지원을 한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과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들은 보통 교란과 폭파, 첩보수집 등이 임무로 주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임무수행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특수무술, 사격술, 무장구보 등을 매일같이 반복했다고 한다.
군을 제대하고 나서도 많은 제약을 받으며 사회생활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게 된다는 게 이들의 전언인데, 제대 후 지원보다는 감시가 항시 따라 다녔고, 어떤 사회의 적응 프로그램도 배우지 않았기에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제는 지역을 위한 희생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특수임무유공자회를 제대로 알아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군에서 배운 기술을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활용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하다가 그 첫 번째가 잠수하는 능력이라 생각해 수중 정화활동을 추진하게 됐습니다.”
수중 정화활동은 보통 중마동 삼화섬 부근에서부터 도촌 선착장까지 수중에 있는 부유물을 수거한다. 이 봉사활동은 광양에서 1년에 두 번씩 진행하고 인근 순천과 목포 등 전남지역의 봉사활동에도 다른 지회와 함께 참여를 하고 있다.
“특히 2004년도에는 태풍 루사가 왔었는데 태풍피해를 입은 지역민을 돕고 그에 따른 환경정활 활동을 실시한 경험이 있습니다.”
조성래 회장은 또 다른 사업으로 ‘북한군 무기전시 및 서바이벌 총 체험행사’를 매년 개최한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나라사랑 및 애국심을 함양하고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마련하는 행사이다.
“보통 6월에 이 행사를 진행하는데 올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행사가 취소될 것 같아요. 국방부에서 무기를 대여해 오는데 올해는 대여해줄 수 없다는 게 그들의 입장이거든요.”
조 회장은 이 행사가 아무래도 다른 지회에서는 하지 않는 행사이기에 무엇보다 뜻 깊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 보람도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태극기 나눔 행사, 청소년 방범활동, 노인복지관 바나나 나눔행사 등 지역에서 부름이 있다면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
“무엇보다 유공자회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단체로 거듭나면서 우리 단체의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꾸준한 노력할 것입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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