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韓國漢文學(한국한문학)
叙光 張喜久
    
    이천년 한자한문 사용한 우리 문화
    학술과 경장 면에 근원을 조성했네
    필묵을 도탑게 하여 온고지신 익히리.
    二千餘歲用漢文  學術瓊章造大源
    이천여세용한문  학술경장조대원
    溫故知新何可棄  誠心筆墨意加敦
    온고지신하가기  성심필묵의가돈

이천년간 한자한문 학술 경장 근원 조성, 
온고지신 포기하랴 필묵 더욱 도탑다네

고려 초기와 중기에 성리학이 유입된 이후 많은 선인들이 한문 문장으로 글을 지어 자기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냈다. 대부분 성리학에 근간을 두고 인륜과 사상에 관한 글을 써서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 기초지식을 터득하도록 했다. 그렇더라도 점차 심오한 문학적 지향세계에 그 촛점을 맞추는 세태의 흐름이 대체적이었다. 특히 고려말부터 시작되는 시조와 한시의 만남이라는 문학은 더욱 그랬었다. 시인은 우리는 이천년간 한자한문을 사용했는데, 학술과 경장에서 근원을 조성했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온고지신을 배우고 익히니 어찌 포기하랴(韓國漢文學)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우리는 이천년간 한자한문을 사용해 왔는데 / 학술과 경장 면에서 근원을 조성했었다네 // 온고지신을 배우고 익히니 어찌 학문을 포기하랴 / 성심성의껏 필묵하면서 도타웁게 하는데 더하겠네]라는 시상이다. 시인과 따스한 대화 한마디는 평설의 요체임을 알면서 간추린다. ‘이천년간 한자한문 학술 경장 근원 조성, 온고지신 포기하랴 필묵 더욱 도탑다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한국한문학을 공부하고 나서]로 의역된다. 성리학에 기초 두었던 한국문학은 초기엔 권선징악이란 인륜의 근본을 목표로 했다. 점차 문학적 상상력에 그 초점을 맞추면서 비유와 상징에 그 근원을 이루었다. 이런 결과에 대해 한시, 소설, 시평 등이 출현되는가 하면, 조선 말기엔 금과옥조와 같은 한글문학도 성행하여 우리 문학을 풍성하게 했다. 다만 우리 문학 근간의 줄기는 한문에서 찾는 것이 옳다. 이젠 한시(漢詩)의 범주를 벗어나 한시(韓詩)로 자리 잡아야겠다.
시인은 이와 같은 점을 염두念頭하면서 한국한문학 공부에 시선의 폭을 도톰하게 더했다. 이천년간 한자한문을 사용하면서, 학술과 경장 면에서 그 근원을 조성했었다고 했다. 이는 훈민정음 창제 정신을 근간으로 두고 새끼줄을 얽혀 맨 형국임을 부인할 수 없으리라. 곧 한국한문학은 한글청제의 정신을 병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세종성군의 훈민정음 창제정신은 그 서문에 보이는 바와 같이 뼈대는 한자 한문이고, 살결은 한글 정신이다. 이런 점을 염두한 화자는 온고지신을 배우고 익히니 어찌 가히 바른 우리 문학을 포기하겠는가를 묻고 성심성의껏 필묵하면서 우리 문학의 도타운 정수를 더해야겠다는 뜻을 밝혔다. 우리는 이제 [한글+한자한문 문화]라는 도톰한 그릇을 생각할 일이다.

【한자와 어구
二千餘世: 이천여년. 用漢文: 한자한문을 사용했다. 學術: 학술을 하는데. 瓊章: 옥과 같은 문장. 造大源: 큰 근원을 만들었다. // 溫故知新: 온고지신. 옛 것을 익히어 새로움을 알다. 何可棄: 어찌 가히 포기하리. 誠心: 정성스런 마음. 筆墨: 붓과 먹. 意加敦: 뜻은 도타움을 더하다.

▲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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