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古文眞寶(고문진보) 
 叙光 張喜久
        
        고문진보 문장 속을 보배로 편집하고
        선명한 고전문학 후생들을 훈육하며
        배우는 유객과 영재 만세토록 온전하리.
        眞寶文章輯寶編    輝煌燦爛古典鮮
        진보문장집보편    휘황찬란고전선
        後生訓育當然筆    儒客英才萬世尊
        후생훈육당연필    유객영재만세존

‘고문진보 보배 편집 고전문학 선명하고, 
후생 훈육 당연하게 유객 영재 온전하리’

 

고문진보는 전국시대부터 송나라에 이르기까지의 시문을 전집·후집으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전집은 권학문과 소박하고 고아한 고시를 수록하였고, 후집은 산문인 17체의 명문을 실었다. 고문진보가 우리나라에 유입된 경위는 자세하지 않다. 고려 말엽의 문신 전녹생(田祿生)이 중국에서 가지고 와서 산증(刪增)을 가하여 처음으로 합포(合浦) 간행했다는 기록이 14세기경 야은일고에 전한다. 시인은 고문진보의 문장들 보배스럽게 다 편집하고, 휘황찬란한 고전문학을 선명히 밝히셨다 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후생들을 훈육하려면 당연하게 필기해야겠네(周易)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고문진보의 문장들을 보배스럽게 다 편집하고 / 휘황찬란한 고전문학을 선명하게 밝히셨네 // 후생들을 훈육하려면 당연하게 필기해야하겠고 / 배우는 유객과 영재들께서는 만세토록 온전하리라]라는 시상이다. ‘시인과 대화하려면 평설을 보라!’ 평설의 진수를 요약했더니만…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고문진보를 읽고]로 의역된다. 고문진보는 고려 말에 수입된 이래 조선시대 서당에서 고문의 연변(演變)과 체법(體法)을 익히기 위한 아동용교과서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위상이 제고되었다. 어우야담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들의 배움은 대개 십구사략과 고문진보를 익히는 것으로 학문에 들어서는 기초적인 문으로 삼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음을 보고 어려운 과정 속에 학문성숙의 한 교과서로 자리매김했음도 알게 한다.
 책제가 보여주는 글자 그대로 후생들이 고문(古文)을 바르게 익히는데 보배로운 터전을 일구는데 진실한 책이란 뜻 그대로였으리라고 본다. 이런 깊은 뜻 속에 일구어진 책이었음을 인식했던 시인은 고문진보의 문장들을 보배스럽게 다 편집하면서도 휘황찬란하기만 했던 고전문학을 보다 선명하게 밝혀 놓았다고 했다.
 화자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보배의 글, 현재와 미래를 바르게 이어야 할 진보(眞寶)를 엮어야 된다는 기준의식 역사의식에 긴 안목을 빼들지 않을 수 없었음을 보인다. 후생들을 훈육하려면 당연히 필기해야 하겠으니, 배우는 유객과 영재들께서는 만세토록 온전하게 전해졌음을 강조해 보인다. 이는 ‘문학의 영속성, 학문의 항구성, 진실의 보배성’까지도 한 아름 부여안아한다는 잰 걸음이 보이는 것 같다.

【한자와 어구】
眞寶: 고문진보. 文章: 문장. 輯寶編: 보배스럽게 편집하다. 輝煌燦爛: 휘황찬란하다. 古典鮮: 고전문학을 선명하게 밝히다. // 後生: 후생. 후배를 뜻함. 訓育: 훈육하다. 當然筆: 당연히 필기하다. 儒客: 유객. 혹은 찾아온 선비들. 英才: 영특한 인재. 萬世尊: 만세동안 높이다.

▲ 삽화 : 인당 박민서 화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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