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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지명유래와 함께 마을 둘러보기(7) - 태인동 궁기마을전우치가 궁을 짓고 살아서 궁터라는 지명 생겨
양재생 기자  |  ttext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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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2.04  09:2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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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인동 궁기마을은 전우치 전설과 맞닿아 있다. 궁기마을의 풍경들.

궁기마을은 태인동 삼봉산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남쪽에는 삼봉산에서 뻗어 내린 산등성이가 있으며, 그 산등성이 너머의 용지마을과 맞닿아 있다.  궁기(宮基)를 ‘궁터’(궁땅)라고도 하는데 이를 역사문헌으로 살피면 1840년에 편찬한 ‘호남도서도’에 대안도(大安島)가 궁장으로 표기되었고, 옥곡면 태인도 지역의 해태((海笞) 및 진포세(鎭浦稅)를 적은 『명례궁수세절목』이란 문헌에 태인도가 옛날 궁땅이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전우치전설과 땅이름 
이 마을 원주민들은 전우치가 궁(宮)을 짓고 살았으므로 궁터라는 땅이름이 생겼다고 전하지만 명례궁(明禮宮) 관할 땅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전설과 겹쳐 있는 모습이다.

전설에 의하면 전우치는 태인도에 궁궐을 짓고 성을 쌓았으며, 말을 조련했던 터 자리가 있다고 전한다. 
오늘날 궁기(宮基)마을은 전우치 궁터이며, 성지(成地:성재)는 그의 성터이고 성 아래 동네가 장내(墻內)이다.
전우치는 태인도에 자리를 잡고 인근 작은 섬들을 유락장으로 썼으며, 한려수도 일대를 지나가는 세공선을 부채바람으로 태인도에 기항시켜 전곡을 약탈했다고 전하고 있다. 
명나라에 황금으로 만든 대들보가 있음을 알고 쌍학을 타고 가서 옥황상제의 분부라고 호령하여 이 대들보를 빼앗아 쌍학다리에 당실로 달아매어 태인도로 왔으나 명나라 관원에게 탄로가 나면서 명나라에서 태인도로 전우치를 잡으러 왔다. 
전우치는 궁터 앞바다 모래 속에 금대들보를 감춰두고 지렁이로 변신해 숨었는데, 포군들이 그의 가족들을 문초했다. 본처는 사생결단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첩이 이실직고 말해버렸다. 전우치는 녹두를 병정으로 만들어 포군들과 싸우게 했는데, 미처 자신은 변신을 못하면서 창끝에 찔려 기름가마에 던져졌다. 그러나 그 지렁이는 간 곳이 없어져 버리면서 포군들은 태인도를 떠났다.
포군들이 떠나면서 전우치는 돌연 삼봉산 서쪽 기슭에 있는 목란천(木蘭泉)이라는 샘에 나타나 말채찍을 세우면서 ‘이 채찍이 살아 있는 날까지 내가 살아 있음을 알아라. 이제부터 나는 천명을 어기지 않고 장생불사 하리라’ 하고는 새끼 달린 백마를 타고 건너편으로 뛰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목란천에는 전우치가 쓰던 금복개가 가라앉았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으며, 전우치가 말을 조련했던 곳을 ‘질마지’라 하며 군사를 주둔시킨 곳을 ‘군도리(軍都里)’라 하고, 금대들보를 파묻은 모래등을 ‘명당등’이라고 전하고 있다.

■ 김 시식지(始殖地)
태인동 궁기마을은 김 시식지의 마을이기도 하다. ‘김’의 시식에 대해서는 완도 조약도의 김유몽, 완도 고금면 용장리 정시원 등의 시식설과 광양의 김여익(1606~1660년) 시식설이 있는데, 현재 궁기마을에서는 영모제를 짓고 전라남도 기념물 제 113호로 지정하여 그 뜻을 기리고 있으며 완도보다 김 시식 연대가 164 ~ 172년 빨리 시작된 것으로 문헌상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김여익은 영암 서호면 몽해에서 태어나 인조 14년(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종형 김여준 수사를 따라 청주에 이르렀으나 항복하자 돌아온 뒤 장흥 동백동을 거쳐 인조 18년(1640년) 태인도로 들어와 살았다. 나뭇가지에 김이 착생하는 것을 보고 밤나무 가지를 이용한 김양식 방법을 창안했다.
이러한 사정은 숙종 40년(1714년) 당시 광양현감이었던 허심(1713. 4~1714. 9재임)이 지었다는 김여익의 묘표에 적혀있는데, 이 묘표는 남아있지 않으나 김해김씨 족보에 남아있다.
현재 김시식지 역사관에는 광양시 해설사가 상시 거주하며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김 양식의 역사와 김의 유래, 김여익 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991년 건립된 김시식유물전시관에는 김 생산도구 32종 53점이 전시돼 있다. 
김과 관련한 지정문화재로는 이곳이 전국에서 유일하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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