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월면 차동마을은 수리치 고개아래 저수지를 품고 있다.

광영동의 도촌(渡村)마을은 마을이름에서나루터를 연상케 한다. 1789년경에 광양현 옥곡면 광포촌(廣浦村)지역인 것으로 문헌상에 처음 기록되어 전하는데 여기서도 광포촌의 ‘포(浦)자가 강가나 바닷가를 뜻하고 있어 나루터와 연관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도촌마을을 생각하면 도촌선착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마을유래
도촌마을은 1780년 쯤 밀양박씨(密陽朴氏)가 처음 입촌했다고 전해오나 문헌으로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이전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금호도에 16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지금은 사라진 양도(羊島)에서 임진왜란 시 염소를 방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금호도·양도 지역과 지형적 여건이 같은 도촌에서도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이다.
도촌마을이 처음에는 옛 광포 바닷가 부근 금턱진 곳에 자리잡고 있어 금턱몰 또는 굼턱몰이라고 불렀는데 뒤에 나루터 마을이 형성되면서 ‘도나루촌’이라 하였다. 1900년을 전후하여 그 당시 금호도와 태인도를 가려면 이 마을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건너야 했으므로 도나루촌을 한자로 표기하여 도촌(渡村)이라 한 것이다.
1912년(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이전에는 광양군 옥곡면 도촌리(渡村里)라 하여 문헌상 마을이름이 기록되어 전하고 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옥곡면 하광리·영수리·도촌리와 당시 골약면 와우리 일부가 병합되어 광양군 옥곡면 광영리(廣英里)에 속했다.
그러다가 1897.1.1. 옥곡면 광영리가 골약면에 편입되어 전라남도 광양지구 출장소 골약면 광영리에 속하였고 1989.1.1.에는 동광양시 광영동 관할지역이 되어 자연마을로 도촌(渡村)이 되었으며 지금은 광양시 광영동에 행정구역상 제1동 지역으로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이사항
이 마을의 또 다른 이름으로 금턱몰이 있다. 도촌마을 북쪽 구석(금턱)진 곳에 위치했다고 불려진 것도 있으나 본래는 이 지역에서 옛날 금을 팠다고 해서 금터몰이라 하다가 그후 금턱몰로 변경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아울러 도촌마을은 옛부터 전답이 적어 생계유지를 위해서는 거의 수산물에 의존해 왔으며, 해방이후 해태양식이 주 소득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금턱몰 선착장은 한때 해태 채취선으로 붐볐으며, 전어잡이 배는 짝을 지어 고기잡이에 활기를 띠었다. 특히 마을 앞에서 많이 잡히던 백합은 이 마을의 명물이었다고 한다. 
또 모내기가 끝난 후 농어낚시로도 유명했는데 1983년 광양제철 건설이 본격화되고 금호도와 연결하는 금호대교가 준공되면서 이 마을 선착장부근 20여 호는 철거되고 해태양식장은 제철부지로 편입되어 수산물 채취는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현재 주요시설물로는 현불사, 수원 백씨 재각, 환경사업소 광영하수처리장, 광영동 상생·화합 상징조형물이 있다. 
광영동 상생·화합 상징조형물은 광영사랑실천협의회가 2010년 원주민·이주민·외지인의 상생과 화합을 위해서 가로, 세로 각 5m의 화강암 기초에 11m 높이의 스테인레스 3각 기둥의 원형구 조형물을 설치한 것인데 아무래도 이곳에서 광영동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듯하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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