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양읍 마로산성 초입에서 작은 커피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고찬희 이즈미씨 부부는 종교단체를 통해 인연을 맺은 국제결혼 커플이다. 이들 부부는 서로가 오래전부터 꿈꾸어왔던 작은 카페를 차리고 마음 편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광양읍 마로초등학교 정문 옆에 위치한 아담한 컨테이너 건물은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인 ‘마로니에뜰’이다.
이 커피숍을 운영하고 있는 이는 일본 후쿠시마 출신으로 한국인과 결혼한 사쿠마 이즈미씨와 그녀의 남편 고찬희씨다.
이들 부부는 지난 2004년 모 종교단체를 통해 부부의 인연을 맺은 후 2005년 광양에 정착해 살고 있다. 
전남 순천 출신인 고찬희씨는 이즈미씨와 결혼할 무렵 경기도 용인에서 살고 있었다. 원래 수산계열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고씨는 학교 졸업 후 참치잡이 어선의 항해사로 3년여 정도를 생활했다.

참치잡이 배 타다 장비 배워
독항선이라 불리는 참치잡이 어선의 주 활동무대는 남태평양이다. 참치잡이 어선은 한번 출항하면 보통 18개월을 바다에서 생활한다. 선원들은 18개월동안 육지를 밟지 못하고 선상생활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생활을 고씨는 2항차나 했다.
오랜 바다생활에 지친 고씨는 중기운전을 배워 경기도에서 크레인 기사로 활동하다가 이즈미씨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2005년 무렵, 여수에서 항해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다시 전공을 살려보려 고향 인근인 광양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러나, 광양에 정착한 후에도 일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항해사로 가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다시 광양에서도 중장비 운전을 하게 된 것.
고씨 부부는 2007년 무렵에는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에 정책해 생활하기도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아내의 고국인 일본의 문화도 배워보자는 생각에 일본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습니다. 3년만 일본에서 생활하자는 생각으로 정착한 곳이 처가가 있는 후쿠시마현 고오리야마시였어요. 그렇지만, 일본어가 서툴러 일을 하기가 쉽지는 않았어요.”
고씨는 일본에서 건축자재 조립과 핸드폰 조립 등의 일을 했고, 아내 이즈미씨는 화물차를 이용해 집집마다 식품을 배달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언어소통 문제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지만, 문화적으로는 많이 배웠습니다. 결국 1년반 정도 생활하다 2008년 제가 먼저 귀국했고, 아내도 이듬해 뒤따라 돌아왔지요.”
일본에서 귀국한 고씨는 다시 광양에 정착해 장비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장비기사로 2년여 정도를 일하던 고씨는 2011년에는 직접 ‘용강지케차’라는 장비회사를 차려 지금까지 운영해 오고 있다.
2009년 귀국한 이즈미씨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협력회사에 취직해 일을 했다고 한다.
일본에서의 생활에 대해 이즈미씨는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부모님에게 효도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점”이라고 회고한다.
“저도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동경에 있는 회사에 취직이 되어 부모님을 떠나 있다가 한국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는데, 일본에서 생활할 때는 친정 가까운 곳에 살면서 주말마다 부모님을 찾아가 함께 식사를 하고, 일을 도와주었습니다. 한국에서 살 때는 남편에게 모든 것을 의지했었는데, 일본에서 생활할 때는 오히려 제가 가장 역할을 해야 했어요. 일본에 다시 돌아가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 살다보니 부모님들도 남편에게 마음을 열고 좋아해 주셨습니다.”
국제결혼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이즈미씨 역시 부모님의 반대를 겪었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한국인으로 살자
“부모님께서 처음에는 반대하셨지만, 결국은 ‘네가 결정한 것이니 열심히 살아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지금은 남편과 아주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일본생활을 접고 귀국한 남편을 따라 이즈미씨도 바로 귀국한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시집을 올 때 죽을 때까지 한국인으로 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니 부모님과 가까운 곳에서 살아서 좋았지만, 남편이 먼저 귀국하자 가능하면 빨리 한국으로 오고 싶었습니다. 한국에는 시어머니와 남편의 가족들이 있으니 보고 싶기도 했고요.”
고찬희∙이즈미씨 부부에게 커피숍을 여는 것은 오랜 로망이었다.
“핸드드립 커피를 좋아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마시기도 했고, 학원에 다니며 배우기도 했어요. 또, 전문가 선생님에게 직접 배우기도 했고요. 커피전문점을 운영해 보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그 꿈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커피숍 운영은 이즈미씨 뿐만 아니라 고찬희씨에게도 현실로 만들지 못한 계획이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고씨는 1996년 무렵 항해사 일을 그만 두고, 순천시 상사면에 LP음반을 테마로 한 카페를 열려고 준비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계획은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현실이 되지 못했다.
현재 이들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커피숍에는 수 백장의 LP음반과 LP음반에 특화된 스트레오 시설이 갖춰져 있다. 커피숍 내부에는 고씨의 애마인 할리 데이비슨 바이크가 인테리어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마음의 여유 찾는 공간 되었으면
코로나 19 와중에 창업을 한 이들 부부는 “그냥 마음 편하게 살자는 생각에 가게를 열게 됐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정문 앞이고 마로산성으로 올라가는 초입의 커피숍은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도 든다.
“오시는 손님 10명 중 9명은 ‘어떻게 이런 곳에 커피숍을 차리게 됐냐?’고 묻습니다. 그렇지만, 돈을 번다는 생각보다 아내가 일하는 최소한의 인건비만 나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습니다.”
고씨는 “음악이 듣고 싶을 때, 비 오는 날 마음의 여유를 담아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생각대로는 안되지만, 음식이니 만큼 오시는 손님들에게 정성을 담은 좋은 차를 대접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특히, 비가 오는 날은 굉장히 분위기가 좋습니다. 그런데, 정작 비가 오는 날은 아무도 오지 않습니다. 혼자 앉아 창밖의 비오는 모습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즈미씨의 말이다. 자녀가 없는 이들 부부는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작은 찻집에서 그들만의 여유를 만들어 가고 있다.
 

황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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