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성마을은 광양읍5일장과 시외버스공용정류장,유당공원 까지 이어지면서 광양읍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신성마을은 광양읍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광양읍 5일장을 품고 있는 마을이다. 우시장 사거리에서 시작하는 백운로, 목성우체국 앞을 지나는 매천로, 광양농협을 지나는 신재로 사이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어 마치 삼각형의 형태를 이룬다. 
여기에 시외버스공용정류장, 광양경찰서읍내지구대, 유당공원까지 연결되면서 광양읍의 중심지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새로운 가상걸
신성마을은 행정구역상 1979년까지는 개성마을에 속해오다가 1980. 1. 12일 개성마을에서 분리하여 행정상 별도의 마을이 되었다. 
1987.1.1. 기준에 의하면 신성마을은 목성리에 속한 목성3구가 되었으며, 현재는 광양시 광양읍 목성리(법정리)에 속하여 신성이라 하고 있다.
신성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중기에 이미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성(新城)이란 이름 유래는 개성(開城)마을에서 파생된 이름으로 ‘새로운 가상걸’ 즉, 성 밖 변두리에 번창하는 마을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가상걸’에서 가상은 ‘갓’, ‘가장자리’, ‘변두리’라는 뜻을 지니고 있고, ‘걸’은 ‘마을 촌’을 의미하므로 성 밖 변두리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을 한문식으로 음차하여 명명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성마을회관은 1981년 준공된 것으로 단층슬래브 지붕을 하고 있다. 
현판이 없다면 가정집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그 외형과는 달리 마을회관에서는 다양한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다. 마을회, 부녀회, 노인회 등이 조직돼 매월 정기적인 모임과 활동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마을주민들뿐만 아니라 인근 지역 노인들도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 

■유당공원
신성마을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는 유당공원은 조선 중종 23년에 현감 박세후가 당시 풍미하던 풍수지리설에 의해 남쪽이 허(虛)하다 하여 만든 숲이다. 현재 많은 노거수가 생육하고 있으며, 그 중 이팝나무는 4월 말이면 초록빛 나뭇잎 위에 흰쌀밥을 뿌려놓은 것처럼 하얗게 꽃이 피는데 천연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보호받고 있다.
유당공원 내에는 총 15기의 비(碑)가 있다. 그 가운데 근래에 새운 공적 비 2기와 정려사적비1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비가 고종년간에 세워졌다. 
현재 마모가 심한 4기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양호한 편이다. 이 가운데 8기는 옥개석이 유실되고 없으며, 가장 이른 시기의 비는 1895년에 세워졌다.
이와 더불어 유당공원 내에는 광양군민 헌장탑과 참전 유공자 기념비가 있다. 광양군민은 검소와 근면을 군민 상으로 정하고 향토의 발전을 계승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 광양군민 헌장탑이며, 6·25 및 베트남전에 참전한 광양지역 출신 참전유공자 1, 500여 명의 공훈과 애국정신을 기리고, 후손들로 하여금 역사적인 의미를 되새기자 의미로 2005년 3월 세워진 것이 참전 유공자 기념비이다. 
이처럼 유당공원은 광양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의미를 지닌 곳이라 할 수 있다. 광양시는 이에 유당공원을 정비해 많은 시민들이 방문하도록 할 방침이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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