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동마을은 봉화산이 마을을 품고 저수지를 끼고 있어 마을자체가 한폭의 그림이다. 마을은 금광 관광명소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점동마을은 사라실예술촌에서 본정마을을 향해 들어가면 봉화산(烽火山)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다. 산이 마을을 품어 안고 저수지를 끼고 있어 마을 자체가 한 폭의 그림 같이 보인다. 
옛 문헌에는 기록되어 전하지 않지만 예부터 봉수 관리에 따른 마을로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며, 금광 채굴지역으로 한때 부촌을 이루었다. 

■봉화산과 금광
이 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사라곡리(沙羅谷里) 지역으로 추정되는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사라곡면(沙羅谷面)에 속하였고 1789년에는 사곡면 본정촌(本井村) 지역이었다. 
양·임·하씨가 차례로 입촌하였다고 전하는데 현재는 하씨(河氏)성을 가진 사람이 많이 살고 있다. 
이 마을사람들은 마을 뒷산인 건대산(件臺山:옛 이름 천태산(舛台山)을 봉화산으로 불렀는데, 건대산 상봉에 봉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봉수대는 통신수단으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로서 그 사정을 표시했다. 
점동(店洞)마을의 이름유래는 ‘점골’이라고 부르는 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부터 이 지역에 철이 많이 나서 솥 등을 굽는 쇠점(鐵店)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쇠점이 있었던 점골은 후에 금광으로 유명해졌다. 
점동(店洞)마을은 금광으로 부를 누렸던 마을로 남자는 광산에서 금을 캐고, 여자는 금광석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서양식 채광기술을 도입해 금을 채굴했으며 해방 이후 폐광되었다가 1954년 광양광업 주식회사가 설립돼 광산개발에 나섰으나 금 시세 하락과 안전사고 등 어려움을 겪다가 1975년에 결국 폐광되었다.
하지만 광양지역이 한때 금광으로 명성을 날렸던 만큼 이것을 알리기 위한 노력은 마을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점동저수지 금광을 품다
마을 앞 점동저수지는 해방 3년 전에 일제에 의해 주민들이 밀가루 배급을 받고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해방을 맞이하면서 공사를 중단했다가 그 이후 다시 공사를 재개해 완공했다. 
원래의 계획보다 저수지가 축소되었다고 전하는데 이 저수지는 지금도 농사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현재 점동저수지는 광양금광의 이야기를 스토링텔링으로 전하고 있다. 나라가 힘들고 어려울 때 황금룡이 광산에서 금이 다시 나오게 한다는 이야기다.
점동저수지 한쪽 면에는 금광이 나왔던 모습을 재현해 놓고 있다. 
금을 채굴하러 금광으로 들어가는 모습부터 당시 사용했었던 여러 가지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아울러 점동 금광 관광명소화사업으로 스마트 앱을 통한 황금 찾기 모바일게임, 광양 금광굴 정비사업, 황금 둘레길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점동 금광굴 입구는 황금룡이 지키고 서 있으며, 금광굴 안을 세련되게 기획하고 있어 앞으로 마을을 찾는 이가 많아 질 것이라는 기대다.

양재생 기자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