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孤石亭(고석정) 
                                        叙光 張喜久

        태봉국 웅장함은 나라의 뜻 대단했고
        근래의 전란으로 잔인함이 컸었구나
        푸른 물 유유한데도 남북 상처 흔적들.
        昔日泰封雄志邦   近來戰亂互殘厖
        석일태봉웅지방   근래전란호잔방
        至今碧浪悠悠溜   南北傷痕共被雙
        지금벽랑유유류   남북상흔공피쌍

‘태봉국은 웅장했네 근래 전란 잔인함만, 
푸른 물결 유유함이 남북 상처 흔적 안고’

 

고석정은 한탄강 변에 있는 정자이다. 세운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된 내용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여기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그 외에도 고려 승려 무외(無畏)의 고석정기와 김량경의 시 등도 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의적 임꺽정이 고석정 앞에 솟아 있는 고석바위의 큰 구멍 안에 숨어 지냈다고도 한다. 시인은 지금에는 푸른 물만이 유유하게 흐르고 있는데, 남북이 상처받은 흔적 아직도 다 꿰매지를 못하고 있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그 옛날 태봉국에는 웅장한 뜻이 대단하였네(孤石亭)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그 옛날 태봉국에는 웅장한 나라의 뜻이 대단하였고 / 근래에 일어난 전란은 서로 잔인함만이 컸었네 // 지금에는 푸른 물만이 유유하게 흐르는데 / 남북이 상처받은 흔적은 함께 피해만 입었네]라는 시상이다. 서문격 여덟 줄 초입문장은 이 글의 요점이자 가이던스가 된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고석정에 올라서서]로 의역된다. 고석정과 임꺽정에 관한 전설 한 편이 전해진다. 조선 명종 때 임꺽정(林巨正)이란 문무를 겸비한 천인이 등과의 길이 막힌 것을 탄식한 나머지, 뜻에 동조하는 무리를 모아 의적단을 조직하였다. 이 조직단이 고석정 건너편에 석성(石城)을 쌓고 함경도에서 상납되는 조공(租貢)을 탈취하여 연약한 서민에게 분배해 준 의적의 근거지로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시인은 임꺽정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로 알려지는 이야기이지만, 태봉국을 세웠던 기상이 유유히 흐르는 곳이 고석정 그 곳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 옛날 태봉국에는 웅장한 뜻이 대단하였고, 근래에 일어난 남북간의 전란은 서로 잔인함이 컸다는 시상 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한탄강 변에 우뚝 서있는 고석정이 민족의 이품이나마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 역사의 흔적을 살핀다.
 화자는 비참한 육이오를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질 것만 같지만, 그 또한 한 바탕 회오리 바람이려니 하는 생각을 해보인다. 그래서 화자는 지금에는 푸른 물만이 유유하게 흐르고 있는데, 남북이 상처받은 흔적은 다 함께 했을 것이니 서로가 피해만 입었다는 한탄을 한탄강을 바라보면서 했을 것이다. 뼈아픈 역사도 우리의 쓰라린 역사의 흔적이다. 교훈삼이 곱게 담아야만 하겠다.

【한자와 어구】
昔日: 옛적. 泰封: 태봉국. 雄志邦: 뜻이 웅장한 나라였다. 近來: 근래. 戰亂: 전란 중이다. 互殘厖: 서로 잔인함만이 컸다. // 至今: 지금. 碧浪: 푸른 흔적. 悠悠去: 유유하게 가다.  南北傷痕: 남북이 입었던 상처다. 共被雙: 두 편이 공동의 입은 상처.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