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白頭山(백두산) 
                                          叙光 張喜久

        백두의 머리 닮아 흰 모자 눌러썼나
        철쭉꽃 넓은 들판 추회 속 속삭이며
        펼쳐진 천리 임해는 아픈 역사 말하네.
        民族靈山麗夏冬   白頭登路躅花恭
        민족영산려하동   백두등로촉화공
        遠望廣野追懷裏   續史疼心萬悔衝
        원망광야추회리   속사통심만회충

‘백두산은 민족 영산 철죽꽃은 가지런히, 
넓은 광야 추회하니 아픈 역사 마음 찔러’

 

백두산이라는 말은 『고려사』성종 10년(981년)에 처음으로 문헌에 보인 것으로 알려진다. 13세기말 문헌인 『삼국유사』, 『제왕운기』에는 모두 태백산이었다. 단군신화, 부여, 고구려를 설명하면서 주로 ‘태백산’을 무대로 언급했다. 혼용되던 이름은 조선에서는 10세기 후반부터 이 산을 백두산이라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는 백산 또는 태백산, 불함산 등으로 불렀다. 시인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여름 겨울 아름답고, 백두산 오르는 길엔 철쭉꽃이 가지런하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넓은 광야를 멀리 바라보며 추회하는 가운데(白頭山)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여름과 겨울 아름답고 / 백두산을 오르는 길에는 철쭉꽃이 가지런히 피었네 // 넓은 광야를 멀리 바라보며 추회하는 가운데 / 이어지는 역사의 아픈 마음 가슴 속을 찌르네]라는 시상이다. 오른쪽 맨 위 요약문 2줄은 번역문 전체의 ‘요약의 요약’이 된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백두산에 오르며]로 의역된다. 백두산 정상의 천지의 물은 "승사하"(昇嗣河. 승차하(乘搓河)라고도 함)를 통해 흐르다가 68m의 장대한 비룡폭포(장백폭포)에서 수직으로 떨어져 북으로 흐른 쑹화강의 발원이 된다. 백두산은 쑹화강 외에도 백두산 산정(山頂) 남쪽으로는 압록강이, 무두봉(無頭峰, 높이 1,930m)의 북쪽 기슭에서 두만강이 발원하는 압록강과 두만강의 발원지가 되어 세 강의 발원의 중심축을 잇는다.
 시인은 이런 민족 영산의 밑받침 하에 까치발을 하면서 조심스럽게 등정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떨림의 극치다.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은 여름과 겨울이 아름답고, 백두산 오르는 길엔 철쭉꽃이 가지런히 피었다는 선경의 그림 한 폭을 상상하게 된다. 우리가 진심으로 원하는 통일과 민족적 자존을 지키기 위한 염원을 담고 백두산 등정에 나섰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섬칫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선경에서 담았던 백두산에 대한 경치의 아름다움이 칭얼거리는 느낌을 받기까지 했겠다. 화자는 넓은 광야를 멀리 바라보며 민족의 자존을 감정의 이입을 통해 추회하는 가운데, 어리석은 역사의 아픈 마음이 가슴 속을 찌른다고 했다. 그것은 어김없는 우리 땅, 그것은 불변하는 우리의 역사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다고 변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한 발자취다.

【한자와 어구】
民族: 민족. 靈山: 영산. 麗夏冬: 여름과 겨울이 아름답다. 白頭: 백두산. 登路: 오르는 길. 躅花恭: 철쭉꽃이 공순하다. // 遠望: 멀리 바라보다. 廣闊: 광활하다. 追懷: 미루어 생각하다. 裏: 가운데에.  續史: 이어진 역사. 疼心: 아픈 마음. 萬曲: 아픈 마음. 衝: 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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