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평마을 입구에는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과 옥평사가 자리하고 있다. 사진은 마을전경, 표지석, 마을회관, 옥평사. 비문 등이다.

광양읍에서 옥룡면 방향으로 가다보면 하평마을이라는 한 마을이 나온다.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마을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하평마을 표지석과 옥평사라는 사당이 이 마을을 쉽게 눈에 띄게 한다. 또 이 마을 버스정류소에는 산남리 남정지석묘군이라는 안내표지판이 보이는데 청동기시대의 고인돌이 이 마을에 있음을 알리고 있다.

■ 평뜰에 위치한 마을 
하평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 옥룡리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룡면에 속했다. 1789년에는 하평마을이 평촌지역으로 됐다가 현재는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지역에 속하여 자연마을로 하평이라 한다.
하평(下坪)마을은 1500년경 이천서씨(李川徐氏)형제가 상평(上坪)마을에 입촌하여 살다가 두 형제가 분가를 하면서 동생이 이곳 하평마을에 장착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마을의 이름유래는 문헌상 처음 기록된 평촌(坪村)에서 알 수가 있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굴몰 즉 상운·하운마을에 비교하여 그 위치가 옥룡천변의 넓게 펼쳐진 뜰에 자리 잡았다하여 평촌(坪村)이라 했으며, 하평(下坪)은 위치상 아랫평뜰에 자리 잡은 마을이라는 뜻이다.
하평마을에는 3개 지역에 지석묘들이 분포되어 있다. 옥평사 부근 마을 진입로와 제각 사이에 1기가 있고, 마을 중앙에 3기가 있다. 나머지 지역으로는 마을 당산나무 주변에 12기 등이 분포되어 있다. 이곳의 지석묘군은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다.
 
■ 옥평사
하평마을 입구에는 약 270년 전에 건립한 이천서씨(李川徐氏) 재실이 있는데, 매년 음력 2월 중정에 종중에서 제사를 지내오고 있다. 옥평사(玉坪祠)는 1959년에 건립됐다가 2000년에 규모 있게 단장하여 2004년에 보수 및 정비를 완료했다. 
이곳 사당은 집안 조상들의 보은 정신을 살리며 효와 예를 배울 수 있는 공간으로 통하는데, 옥평사 입구에 있는 ‘진모문(進慕門)’이라는 현판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진모문(進慕門)은 ‘나아갈진(進), 그리워할모(慕), 문문(門)을 사용한 것으로 ’조상을 그리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옥평사에는 조상의 공적비는 물론, 이천서씨 이천서공휘병백처, 효열부양성이씨기행비 등 열부비가 남아 있다.
또 옥평사 입구에는 처사(處士) 서천일(徐千鎰)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비가 있는데, 이 비문은 서천일 12대손 서한주(徐漢周)가 글을 짓고 서한종(徐漢種)이 글을 썼다고 전하고 있다.
이 마을 출신 중에는 항일독립운동가 서찬식·박봉섭이 있는데, 이들은 3.1운동 당시 서당에 다니던 어린 학생이었지만 ‘선배들이 독립만세를 부르다 왜놈들에게 끌려갔는데 우리가 어찌 앉아서 공부만 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태극기를 만들어 들고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부르다 왜경에게 검속당해 심한폭행을 당했으나 동료 7명이 굴하지 않고 항변했다고 한다. 현재 옥룡초등학교 교내에는 7소년들의 3.1운동의 의거를 기리는 칠의사 삼일운동 기념비가 마련돼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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