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운마을은 마을을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사진은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증흥사. 증흥산성3층석탑, 마을전경, 쌍사자석등, 이정표 순이다.

상운마을은 백운산 산기슭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로 구경꺼리가 참 많은 마을이다. 마을에서 조금만 들어서면 걷기 좋은 산책로가 나오며 그 위로 증흥산성과 증흥사가 있다. 
증흥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국보 제103호인 중흥산성쌍사자석등(모조품)과 보물 제112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을 볼 수 있다. 

■마을의 유래
상운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北面) 옥룡리(玉龍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룡면에 속하였으며, 1789년경에는 옥룡면 쌍정촌(雙亭村)과 굴물촌(堀勿村) 지역이었다. 현재는 광양시 옥룡면 운평리 지역으로 행정리상 양운(兩雲)에 속하여 자연마을로 상운(上雲)이라 한다.
상운마을은 약 220년 전 의령 남씨 택명(澤明)이란 사람이 처음 입촌하여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하고 있으나 국가 주요문헌에 의하면 1789년경에 이미 마을이 있었음을 알리고 있어 이보다 앞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본다.
상운마을과 하운마을을 함께 부르는 양운(兩雲)마을은 옛날에는 굴물(堀勿)이라고 문헌으로 기록되어 전하는데, 상운의 본래 이름 뿌리인 굴물은 산골짜기라는 의미로 백운산 산기슭에 자리 잡은 마을이란 뜻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기 때문에 구름이나 안개가 자주 끼면서 운리(雲里)라고도 불리었는데 그 운리마을이 분리되면서 상운(上雲)·하운(下雲)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쌍정촌(雙亭村)지역은 지금의 삼정리(三亭里) 또는 삼정지에 속하는 곳으로 한때 상운에 속한 자연마을이었다. 삼정지에서 흥룡교로 가는 세갈랫길 도로 진입로에 옛 옥룡면사무소가 있었으며, 그곳을 ‘터서리’라 불렀다. 옥룡면사무소는 1920년경에 현재의 장소로 이전하였다.
옥룡면 운평리 16번지 삼정지 도로변(대방교회 옆)에는 해주오씨열려비가 위치하고 있다. 열녀 오귀례(吳貴禮, 1896년생)는 조영래(趙英來)의 처로 남편이 위독해 사망하자, 젊은 나이에 정절을 지키고 살면서 조카 2명을 친자식처럼 키우는데 평생을 받쳤다고 한다. 오씨 열행에 대한 주민의 칭송이 이어지면서 1928년에 열녀비가 세워졌다.

■중흥산성과 중흥사
이 마을의 뒤편에는 전라남도 기념물 제178호로 지정되어 있는 중흥산성이 있다. 중흥산성은 해발 278.2m에서 406m에 이르는 6개의 산봉우리를 아우르면서 계곡의 경사면을 최대로 이용하여 성벽을 축조한 것으로 성안에 넓은 계곡을 포함하고 있는 토성(土城)이다.
축성시기는 통일신라 말 또는 고려시대 초기로 보고 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의병과 승병의 훈련장으로 활용되었고, 왜군의 습격을 받아 격렬한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전해온다. 
증흥산성 내에는 국보 제103호인 중흥산성쌍사자석등과 보물 제112호 삼층석탑으로 유명한 증흥사가 있다. 중흥산성쌍사자석등은 본래 증흥사 경내에 있었던 석등이었으나 1913년 일본인이 일본으로 옮겨가려 시도를 하다가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는 국립 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석등은 두 마리의 사자가 연화석(蓮花石) 위에서 서로 가슴을 맞대고 머리를 들어 석등을 힘차게 떠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살아있는 듯 한 사자의 사실적 표현과 조각기법이 탁월하다. 현재 증흥사에는 쌍사자석등 모조품이 전시되어 있다.
중흥산성 삼층석탑(中興山城 三層石塔)은 신라 말기에 건립된 석탑으로 3.8미터의 높이에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형미를 갖추었으며, 기단면석의 각 면이 양분되어 인왕(仁王), 사천왕(四天王), 천부상(天部像), 신장(神將)과 보살상 등이 조각되어 있다. 1층 탑신의 4면에는 연꽃 위에 앉아 있는 부처상이 각각 조각되어 있다. 옥개받침은 3단씩인데 옥상(屋上)은 약간의 경사를 이루었으며, 옥개석은 받침이 너무 짧고 두터운 특징이 있으며 상륜에는 보주만이 있다. 하지만 현재 3층부 탑개부가 파손되어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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