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월마을은 재첩이 서식하지 좋은 환경을 갖고 있으며, 광양광산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마을 앞 표지석은 이 마을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현월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 사라곡리 지역으로 추정되는 마을이다. 현재는 광양읍 초남리에 속하며 초남마을과 맞닿아 있으며, 재첩이 서식하기 좋았던 마을로 옛날 광양광산이 있었다.

■재첩이 서식하기 좋은 마을
현월마을은 김해김씨(金海金氏) 김태서가 약 340년 전 처음 입촌하였고 뒤를 이어 고령신씨, 영광김씨, 제주고씨 순으로 입촌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마을의 모습은 양쪽에 산을 끼고 골짜기에 마을이 이루어져 있어 지형적으로 초생달 형국이다. 마을 뒷산이 ‘하늘의 달을 매달아 놓은 곳’이란 뜻으로 ‘매달 현(懸), 달 월(月)’의 글자를 써서 현월이라 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은 ‘핸월’이라고도 부른다.
초남리란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원래의 초남리(草南里)에 현월리(懸月里)를 병합하여 초남리(草南里)가 되었다.
현월마을은 광양만 일부인 마을 앞 모래 개펄에서 자연산 재첩이 많이 서식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광양읍 동천과 서천, 사곡천에서 흘러내리는 민물과 광양만 바닷물이 합수되는 곳으로 재첩이 서식하기에 알맞은 지역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현월주민 뿐 아니라 광양읍, 봉강, 옥룡 등지의 주민들이 이곳에서 많은 재첩을 채취하여 어려운 시기를 극복했으며, 지금도 광양제철소 광양컨테이너 부두 건설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은 지역으로 옛날보다는 못하지만 상당량의 재첩이 채취되고 있다. 또 여기서 서식하는 자연산 재첩 종패는 맛과 질이 좋아 인근 진월·다압 등에 가져가 서식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 고 장군설화와 초남광산
현월마을은 섬다리를 놓았다는 고(高)장군의 후손인 제주고씨(濟州高氏)의 후손들이 살고 있다.
고장군에 대한 설화는 관직상의 장군인지 아니면 힘이 세고 풍채가 좋아 세인들에 의해 비유로 불러진 것인지는 알 수 없는데, 고 장군은 총각 때 지금의 초남교가 없는 동천(東川)에 섬돌로 다리를 놓아 초남지역 사람들의 편의를 도모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고 장군 이야기가 마을 촌로들로부터 전해져 오고 있으며 그의 무덤은 마을 뒷산에 마련돼 있다.
현월마을에는 위치상으로 마을 동남쪽에 옛날 광양광산이 있었다. 이 마을에 광산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1895년에 정부에서 사금개발 조례를 발표한 이후다. 
1906년에 함안인 김순서(金順緖)와 김순여(金順女)가 사곡리와 초남리 일대에서 광맥을 발견·채굴한 것이 광양광산의 시초였고, 그 후 일본인에 의해 광산개발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광양하면 금(金)을 연상할 만큼 막대한 금이 생산되어 광양읍내의 경제를 좌우했다고 한다.
해방 후 금광은 일시 폐광되었는데 1958년 광양읍 사곡리 거주 하태호가 정부로부터 폐광지를 불하받아 다시 채광을 실시하여 국내 최초의 온식제련장을 실시했고 그 후 국내굴지의 광산이 되었다가 1975년 폐광됐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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