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동마을은 옛날 포구가 있었던 마을이며, 사진은 위에서 부터 마을 전경, 마을표지석, 마을 당산나무, 마을회관, 사각정자 등이다.

금동마을은 진월면에 속한 자연마을로 송현마을과 구동마을 사이에 위치해 있다. 조용한 시골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만 마을 이름에서는 평범함을 느끼지 못한다. 마을이름에서 거문고 금(琴)’자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 특별해 보인다. 마을 동쪽에 흐르는 섬진강이 거금고 가락에 흥을 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문고 금(琴)’자 사용 이유                 
금동(琴洞)마을은 고려 또는 그 이전에 거을망포(巨乙亡浦)지역으로 추정되며 1600년 경에는 광양현 동면 월포면(月浦面)에 속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2년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이 지역에 마현리(馬峴里)·금동리(琴洞里)란 마을이 있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하면(津下面)과 월포면을 통합하여 진월면이 되면서 월포면의 금동리(琴洞里), 신송리(新松里), 구송리(舊松里), 마현리(馬峴里)가 병합하여 진월면의 송금리(松琴里)에 속하게 됐다.
금동마을은 약 370년 전에 이천서씨(利川徐氏)가 처음 입촌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나 본래의 마을 터인 마을 앞에 ‘거을망포(巨乙亡浦)’란 포구가 있었으므로 이보다 앞서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거을망포(巨乙亡浦)는 마을 지형에 연유하여 붙인 이름으로 이 지역이 ‘걸채(걸개)’ 즉 말안장에 해당하는 ‘걸망’ 모습인 것에 착안해 앞에 포구가 있어 ‘걸망개’라 하였으며, 이를 한문식으로 음차(音借)하면서 ‘거을망포(巨乙亡浦)’라 부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 마을 이름을 두 글자로 제한하면서 ‘금동(琴洞)’으로 바뀌었는데 ‘거울망’을 한문식으로 쓰면서 음이 비슷한 ‘거문고’로 음차(音借)하여 ‘거문고 금(琴)’을 사용한 금동(琴洞)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전하는 이야기로는 마을 앞에 조그마한 산을 ‘똥메똥’이라 하는데 이곳 산세가 거문고형이라 금동(琴洞)이라 했다고 하며, 약 320년 전 거문고를 잘 타던 이 마을 이천서씨의 거문고 가락에 착안하여 ‘거문고 금(琴)’자를 사용했다고 전하고 있다.

■마을의 자랑거리
금동마을은 마을 뒤쪽에 세 개의 주된 봉우리가 있는 삼봉산(三峰山)을 뒷배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동마을을 가는 왼 고갯길이 마을 앞을 지나면서 마을회관이 길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회관 바로 옆에는 운동 시설이 갖춰져 마을 주민들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고 있으며, 그 아래에는 금동마을의 자랑인 약 370년 수령의 정자나무가 있다. 
이 정자나무는 흉고 4.5m, 수고 20m 규모의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으며, 정자나무 바로 아래에 있는 사각 정자가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 역할에 한 몫을 더하고 있다.
금동마을 남쪽에서 ‘왼고개’로 가면 몰(말:馬)처럼 생긴 지형인 ‘몰고개’란 특정지명이 있는데 이는 마현리의 마현과 똑같은 의미를 갖는 지명으로 과거 이곳에 작은마을이 형성되어 주민들이 살았다고 한다.
또 마을 서쪽에는 ‘운양재(雲陽齎)’라는 이천서씨의 재실이 있다. 약 220년 전에 건립되었다가 6·25 동란 시 폐사되고 2000년에 새로 단장되었는데, 옛날 이곳에는 삼학동(三學洞)이라는 서 재가 운영되면서, 학동들을 가르쳐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고 전하고 있다.

양재생 기자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