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동마을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에 위한 마을이다. 사진은 섬진교, 평화를 여는 마을, 불암사, 마을회관, 마을전경 등이다.

원동마을은 광양에서 하동으로 넘어가는 섬진교와 접해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한때 주막거리로 불리었는데, 하동에 장이 서는 날이면 진상면 사람들이 나뭇짐이나 장삿거리를 지고 넘어와 이 마을의 주막에서 술을 먹고 쉬었다는 데서 유래됐다. 지금도 이 마을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임에 틀림없다.

■평화를 여는 마을
원동마을은 1750년경 인동정씨(仁同丁氏)가 처음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했다고 전하나 이보다 훨씬 먼저 이곳에 섬진원(蟾津院)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실제 설촌연대는 그 이전인 것으로 추정된다.
원동(院洞)이름 역시 섬진원과 관계가 깊다. 섬진원(蟾津院)은 옛날 인가가 드문 곳에 관에서 집을 지어놓고 공무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곳인데, 원동(院洞)은 섬진원이라는 원집(院)이 있었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구두로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1700년쯤 전남 영광에 살던 김해김씨 5대종손 김억근씨가 보부상을 하면서 이곳 원동마을이 동부전남과 서부경남의 보부상들이 통과하는 중요한 요로임을 알고 이곳에 지금의 여관 같은 숙박시설을 경영하기 위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특히 이 마을 내에는 또 다른 마을이 존재하는데, 바로 ‘평화를 여는 마을’이다. 
평화를 여는 마을은 한국 사랑의 집짓기운동 연합회가 집이 없는 서민들에게 삶의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이곳 전남광양과 경남하동 경계지역에 집터를 마련한 것으로 여러 기관, 단체, 회사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2000년 8월에 32세대를 건립했다. 당시 영호남 화합차원에서 하동 16세대 광양16세대가 입주하여 마을단지를 이루었으며 현재도 영·호남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생활을 하고 있다.

■섬진교와 불암사
광양과 하동을 연결하는 섬진교인 구교(舊橋)는 왜정시대인 1937년 7월에 설치하였고 2001년에 철거되었으며, 2000년에 인근에 새 다리를 설치했다. 
새 교각 설치 시 강 밑바닥을 정리하면서 강 밑 원바닥 깊이가 20m정도였다고 하는데 옛날 이러한 강 깊이로 섬진진을 거쳐 구례·곡성 등으로 배가 드나들 수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고증 자료가 되고 있다.
진상면에서 이 마을로 넘어오는 고개에는 절이 하나 있는데 불암사(구,무등암)라는 암자다. 
불암사는 현재 다압면 신원리 산 20-1번지 에 위치해 있는데 1959년에 홍칠문(洪七文)과 그의 처 이용순이 창건한 절이다. 
1961년에는 절 뒤의 바위굴에서 부처를 모셨는데 이러한 연유로 이 절을 ‘석굴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절에는 문화재 자료 제211호로 지정된 불상이 있다. 
이곳 불상은 보살좌상으로 1678년에 만들어졌는데 처음 봉안처는 지리산 소은난야(小隱蘭若)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장소가 문헌에 나오지 않아 소재지는 파악할 수 없으나 당시 무등암 주지인 은사스님이 쌍계사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이 보살상을 가져온 것이라 하므로 소재지가 쌍계사의 암자일 가능성이 크다. 전남지방에서 최초로 대세지보살좌상을 한 예(例)로 조선후기의 불상자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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