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돌릭대학교 노관범 교수는 지난 2011년 9월 11일 ‘고전의 향기 - 광 양선비 황병중’이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 황병중 선생은 백운산 의병장 황병 학 선생의 친형으로 광양의 의병활동 과 관련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광 양만신문은 광양의 선비 황병중 선생 에 대한 노관범 교수의 글을 연재한 다. (편집자 주) 고암 황병중은 전라도 광양 선비이 다. 신미양요가 일어난 해에 태어나 20대에는 동학농민운동의 격류에 휩 쓸렸고, 30대에는 을사늑약의 충격 과 의병운동의 불길 속에 있었으며, 40대에는 식민치하에서 통곡과 독서 로 세월을 보냈다. 신득구(申得求), 송병선(宋秉璿), 최익현(崔益鉉), 전우(田愚)선생을 師事하여 문하에 출입한 도학자였고 황현(黃玹)선생에게 아낌없는 사랑 을 받는 문인이었다. 고암 황병중선생은 양명학에 관심 이 많았다. 양명학은 중국 명나라 중 대 철학자 왕양명(王陽明, 1368- 1661)에 의해서 태어난 사상으로 그 당시 주자학이 대표적 지배사상으로 주류를 이루어 과거에 급제하기 위한 입시용 학문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주자학은 필요 없다는 것을 설파하고 모든 것을 이치(理)로 파악 하는 주자학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 으며 진정 중요한 것은 마음(心)으로 가장 순수하고 착한 마음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것이 양명학 이다. 그는 양명학을 저술 ‘내 마음은 밝 게 빛난다’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우리나라도 1800년대 후기부터 실 학자, 박은식 등이 양명학을 연구했 다. 고암 황병중선생은 1914년 간제선 생의 추천을 받아 서울에서 양명학 문집을 구하여 3년여에 걸쳐 이를 모 두 독파한 후 양명학의 필요성에 공 감하였다. 그래서 고암은 ‘우리 조선도 주자 학을 하지 말고 양명학을 했더라면 일본처럼 일찌감치 근대화에 성공했 을 텐데 지긋지긋한 주자학에 모두가 매몰되었기 때문에 근대화에 뒤처져 서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말았다’고 한 탄하고, 1917년 중국의 양명학을 정 선해서 양명집초(陽明集鈔)를 저술 했고 중국에서 구한 양명학에 관한 책을 독파하고 느낀 점을 독후감식으 로 저술한 독왕양명집(讀王陽明集) 을 저술하였다. 황현(黃玹)선생의 字는 운향(雲卿), 호는 매천(梅泉)이고 본관은 장 수로 황희정승 후손이다. 문인, 시인, 열사로 ‘매천야록’, ‘매천집’, ‘매천시 집’, ‘오하기문’, ‘동비기략’ 등 많은 저 서를 남겨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 는 1910년 8월 우리나라가 일제의 강제병합에 분개하여 조선의 500년 역사에서 이런 치욕을 당하였는데 선 비 한 사람쯤은 목숨을 끊어 그 치욕 을 알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며 절명시 4수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2년 정부에서는 그의 공을 기리 어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황병중(黃炳中)선생의 字는 정유 (靜有), 호는 고암(鼓巖)이고 본관은 창원이다. 1871년 10월 22일 광양에서 황재 모(黃在模)의 장남으로 태어나 백부 황응모(黃應模)의 아들이 없어 양자 로 입적했다. 그는 천성이 온후하고 학문에 매진하여 조예가 깊어 척사위 정론을 주장했던 면암 최익현 선생, 양재 전우선생을 사사(師事)하여 문 하에 출입하면서 교분이 두터웠다. 고암집(1938년 총독부 허가를 받아 간행), 양명집초, 독왕양명집을 저술 하였고 고암집에는 황병학, 황순모, 한규순, 백학선 독립운동가를 대상으 로 한 의사전이 저술되었다. 매천 황현선생과 고암 황병중선생 은 구례와 광양 지근거리에 살아서 교분이 두터워 자주 서로 왕래하면서 친교가 깊었다. 매천 황현선생은 1855년생이고 고암 황병중은 1871 년생이라서 형님 아우하면서 서로가 학문의 깊이를 존경했고, 고암 황병 중은 매천 황현선생으로부터 많은 사 랑을 받기도 했다. 매천 황현선생이 고암 황병중을 칭송하는 한시 2편을 남겼다. 鼓巖 黃炳中 칭송 漢詩 / 梅泉 黃玹 <제1편> 讀 書 長 眼 力 깊은 독서로 세상을 멀리 보며 能 識 靈 山 址 신령한 산의 깨우침 을 받았도다 不 患 來 者 少 내왕하는 사람 적으 나 數 家 自 一 里 마을을 한 가족처럼 이루었고 出 門 郞 樵 漁 벌목과 고기잡이로 번창하구나 入 室 有 經 史 방에는 경전이 그득 하니 種 花 莫 種 桃 꽃씨를 심을 때는 복숭아는 피하시게 恐 有 花 浮 水 물위의 꽃잎 보는데 골돌할까 두렵네 <제2편> 吾 廬 亦 復 夜 燈 遲 나도 밤늦게 까지 불은 밝히지만 衰 懶 看 書 只 自 欺 늙고 게을러 글 읽는 건 말뿐이며 縱 有 黃 金 齊 北 斗 황금이 하늘 의 별처럼 많다 해도 聰 明 難 買 少 年 時 예전의 총명 함 되돌리기 어려운데 烏 衣 子 弟 摠 奇 珍 그대 귀한 집 자제로 기특한 것은 雅 謔 淸 談 百 遍 新 우아하고 맑 음으로 항상 새로워지며 抱 書 獨 人 名 山 去 책 가득 품고 산에 홀로 오르니 不 是 尋 常 後 輩 人 필시 웅대한 뜻 펼칠 후배로세 (다음호에 계속)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