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서마을은 광양읍성 서쪽에 위치한 마을로 효자 우달홍 정려비가 있다. 사진은 광양동초등학교, 우달홍 정려 세수재와 정려비, 당산나무, 인서마을회관 등이다.

인서마을은 본래 광양현 남면(南面) 인덕리(仁德里)지역으로 추정되 는데 광양읍성과 관련이 깊다.

위치상으로는 인동숲을 포함한 광 양동초등학교 부근이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는 남문외촌 (南門外村)과 둔촌(屯村)지역으로 표기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 지역이 광양읍성의 남문 바로 앞에 위치한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성 밖 서쪽에 위치한 마을 광양에도 읍성은 존재했다. 읍성의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펼치기 위해 1415년에 성을 쌓은 것으로 추정된 다. 규모는 둘레 549m에 높이 3.9m 로 돌로 쌓아 대부분의 성곽을 갖췄다.

북문은 풍수적인 이유로 만들지 않 았다고 전하며, 동문과 서문, 그리고 남문은 읍내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동문은 광양읍 읍내리 167-3번 지 주변, 서문은 칠성리 357-2번지 주변, 남문은 읍내리 303-2번지의 도로 주변으로 추정되는데 현재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인서(仁西)마을의 인(仁)은 마을주 민들에게 유교사상을 널리 함양시키 고 유교의 실천이념을 표방하는 뜻 을 담고 있으며, 서(西)는 광양읍성 의 남문에서 볼 때 성 밖 서쪽에 위치 하는 마을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마을에는 광양읍성과 관 련된 특명지명이 아직도 전해진다.

남문터는 광양읍성의 남문이 있었던 옛 터를 지칭하며, 인서마을의 골목 길을 마을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벅 수거리라 부르는데 이는 이곳에 벅 수(장승)가 서 있었던 거리로 옛날 현 감이 4인교를 타고 나와 조련장까지 갔다고 하며, 그 길이 제법 넓어 큰 길, 큰골목 또는 원님길이라고 했다 고 전한다.

■효자 우달홍 정려(禹達弘 旌閭) 유교의 실천이념을 내세우는 인서 마을에는 특별한 효자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바로 효자 우달홍의 이야기다.

광양동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가 다 보면 바로 뒤에 광양향토문화유 산 1호인 효자 우달홍 정려비(孝子禹達弘旌閭碑)와 세수재(世修齋)가 나온다.

광양읍 인서리 151번지에 위치해 있는 이곳 정려는 1893년 당시 예조 (禮曹)에서 우달홍에 대한 행장을 입 안해 고종의 재가를 받아 정려를 하 사하고, 동몽교관(童蒙敎官)과 봉조 대부(朝奉大夫)로 증직(贈職;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올림)을 내렸다.

우달홍은 어버이 섬김이 지극해 변 을 맛보아 부모의 병을 살피고 위중 하자 손가락을 베어 단지주혈 하였 으며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3년간 묘 소 근처에서 시묘살이를 하다 세상 을 떠났다고 한다.

현재 정려와 함께 당시 건립된 우 달홍의 효행을 기리는 세주재(世修齋)에는 예조 입안, 우달홍 교지, 정 려기 등 현판 50여 개가 보존되어 있 다. 또 이 마을의 특별한 인물로는 8·15해방, 6·25동란 등 우리 고 장의 역사 소용돌이 현장을 사진으 로 기록한 사진작가 이경모씨가 있 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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