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길마을은 진상진월다압 경계에 위치한 전형적인 시골마을이다. 사진은 오른쪽 위에서 부터 마을전경, 마을회관, 무동정, 사자석등 표지석, 하우스 단지 등이다.

가길마을은 행정 구역으로는 진월면에 속한 마을이지만 위치상으로 볼 때는 진상·진월·다압면의 경계에 있다. 진상면에서 다압면으로 넘어가다 보면 불암사라는 절이 있는 가파른 절벽이 나오는데 그 절벽을 기점으로 진상과 다압이 좌우로 나뉘고, 그 아래는 진월면에 속하는데 가길마을이 그곳에 있다. 

■좋은 일만 더하는 마을
가길마을은 본래 광양현 동면(東面) 월포리(月浦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월포면에 속했다. 1789년경 호구총수에 마을이름이 가길촌(加吉村)으로 기록된 것을 참고하면 마을의 형성시기는 약 320년 전으로 추정된다. 1912년 왜정시대 행정구역 개편 이전에는 월포면 가길리(加吉里)라 했다.
가길(加吉)마을은 ‘갈기리’ 또는 ‘갈거리’라고도 부른다. 
이는 진상면과 다압면 경계에 있는 깃대봉에서 남하한 산등성이가 가길마을 위쪽에서 갈라져 좌측으로는 국사봉, 우측으로는 무동산으로 산세가 뻗어 있는데 이곳 ‘갈라진 곳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갈기리·갈거리’라 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갈기리·갈거리’라 부르는 이름을 한문식으로 바꾸면서 조금 더 아름답게 쓰려는 의도까지 포함하여 ‘가길(加吉)’이라 이름한 것으로 추정되며, 더할 가(加)에 길할 길(吉)이 되어 ‘좋은 일만 더해 가라는 의미의 마을이 됐다.
현재 가길마을에서 골짜기를 통해 다압면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다압면 신원리 불암사로 가는 골짜기는 마을에서 볼 때 여전히 건재하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서북쪽에서 다압으로 가는 이 골짜기를 길마형국이라고 해서 ‘길매재’라고 부른다.

■사자석상과 당산제
가길마을은 50호가 채 되지 않는 작은 시골 마을이지만 마을 입구만큼은 남다른 기세가 느껴진다. 
마을을 안내하는 표지석이 사자 석상으로 되어 있으면서 사자의 위풍당당함을 빌어 악귀를 몰아내고 액운을 피해 마을의 부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적은 가구수와 무동산 아래에 위치해 마을의 존재를 알리기 쉽지 않았던 애로도 이 사자 석상으로 인해 해결하고 있다.
석상에서부터 마을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300m가 족히 넘는데 그 길가 양쪽에는 비닐하우스가 단지를 이루면서 이 마을의 소득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비닐하우스 시설재배로 양상추, 수박,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그 이외에 매실, 감 등의 특작물을 재배한다. 또 봄과 가을이 되면 마을 공동으로 재첩을 채취하면서 공동소득을 얻고 있다.
가길마을은 오래전부터 마을 구성원들의 단합이 잘 됐다고 전하는데, 이는 이 마을의 당산제에서 알 수 있다. 1960년 이전에는 마을의 당산나무 아래에서 매우 철저한 제례(祭禮)를 지냈다.
마을 사람들이 전하는 이야기로는 정월 초하루에 당산제를 지냈는데 제주가 상당히 권위가 있었으며 마을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으로서 당산제 3일 전에 목욕재계하고 3일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밖에 나가지 못할 뿐 아니라 마을 주변은 물론 다른 마을 사람에게도 눈에 띄지 않아야 했다고 한다. 또 마을 사람들은 3일 동안 당산제에 쓰일 음식을 장만하고 부정(不貞)스런 일을 하지 않아야 했다. 현재 당산나무는 고사되어 버렸는데 대신 그곳에 귀목나무 암수 두 그루를 심어놓고 매우 간단하게 제를 지내고 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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