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특집 > 기획
기획연재 / 지명유래와 함께 마을 둘러보기(69) - 광양읍 동주마을광양・순천 경계 위치…동지와 주령으로 이뤄진 마을
양재생 기자  |  ttexta@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5.19  09:17:3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동주마을은 동지와 주령이 두 마을이 합쳐져 만들어진 마을이다. 사진 위는 주령마을 전경과, 옥녀봉 금두암비 이며, 아래는 동지마을 전경과 마을을 잇는 횡단보도, 가운데가 독립운동가 문재교의 생각 터다.

동주마을은 순천과 광양의 경계를 잇는 반송재에 걸쳐 있는 마을이다. 마을을 지나는 국도로 인해 주령(珠領)과 동지(東池) 두 개의 마을로 나뉘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행정리상으로는 하나의 마을로 동주(東珠)라 한다. 광양에서 순천으로 가는 국도를 기준으로 동지(東池)는 반송재 왼편에, 주령은 반송재 너머 국도 오른편에 있다. 

■반송재에 걸친 마을
동주마을은 동지(東池)와 주령(珠領) 두 마을이 합쳐져 만들어진 마을이다. 따라서 마을 이름도 두 마을의 앞글자를 따서 동주(東珠)가 되었다.

동지(東池)마을은 순천에서 광양으로 넘어오다 보면 오른편 언덕길을 통해 들어설 수 있는데 마을의 알리는 표지석은 없고 이정표만이 마을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동지마을의 입촌설은 두 가지가 전해오는데 이천서씨라는 설과 파평윤씨라는 설이 있다. 
다만 이천서씨 설에 대해서는 입촌내역을 알 수 없고, 파평윤씨라는 설은 1670년쯤 윤세량(尹世良)이 경상북도 안동 부사직을 사임하고 이곳을 지나던 중 산세가 좋아 처음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고 전하고 있다.
동지(東池)의 이름은 마을 남동쪽에 오산제언(筽山提堰)이란 방죽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하여 ‘마을 동쪽에 못(池)이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됐다. 왜정시대에 이 못(방죽)을 중심으로 인덕저수지를 축조했으며 이곳 저수지 물을 빼면 옛 못의 형태가 그대로 들어난다고 한다.
반면 주령(珠領)은 광양에서 순천으로 가는 길에 반송재를 넘어서면 오른편에 마을이 있는데 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대로변에 자리하고 있어 동지(東池)와 대조를 이룬다. 
주령(珠領)은 김씨·오씨·신씨가 임진왜란 때 피난을 와서 정착함으로써 마을이 이루어졌다고 전하고 있어 마을 역사는 약 420년으로 추정된다.
주령(珠領)마을 이름 유래는 마을 왼쪽 편 뒷산 가장 높은 봉우리인 옥녀봉에서 산세가 비스듬하게 내려와 중간쯤에서 산자락까지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형국이 마치 옥녀의 치마주름에 해당되는 곳이라 하여 ‘주름골’이라 불리게 됐는데 이를 한문식으로 표기하다가 주름골에서 주령(朱令)골로 다시 주령(珠領)골로 변한 것으로 추정된다.
안동부사 윤세량(尹世良)이 부사직을 사임하고 이곳에 정착하자 본읍 수령들과 함께 활을 쏘며 즐겼다는 ‘사장등’이란 지명이 남아있고, 반송재(盤松재)에는 예부터 온수(溫水)가 난다는 풍수지리설이 있다. 
이 때문에 반송재는 달걀을 반숙할 만큼 뜨거운 물이 난다하여 ‘반숙쟁이’라고도 하였는데 이 말이 변형되어 반송재(盤松-)라 불리게 됐다고 한다.

■마을을 잇는 육교설치
순천에서 광양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에서 남쪽으로 소로를 따라가면 마을이 나오고 이곳 북서쪽 구릉 정상부에 지석묘 6기가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북동쪽에서부터 뻗어 내려온 산줄기가 구릉을 형성하고 있는 지점으로 동·서쪽은 낮은 지형을 이루고 있어 동쪽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고, 서쪽은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6기 가운데 2기는 남쪽 밭에 위치하고 있는데 1기는 이동됐으며, 나머지 4기는 북쪽으로 약 5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주변에 상석으로 보이는 석재들이 다수 산재하고 있어 남-북방향으로 길게 분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주령마을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옥녀봉 금두암비가 세워져 있는데, 금두암은 주령마을 뒷산, 즉 옥녀의 머리에 해당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마을안쪽으로 가면 문재교(文在敎) 독립운동가 생가터가 있다. 
문재교는 1910년 경솔국치를 당하자 통분한 마음을 품고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던 끝에 정동근, 양기중, 양재홍 등과 함께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기로 결의했다. 이들은 1년여 동안 십여 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수합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82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주령마을은 40여 호의 가구가 사는 반면 동지마을은 현재 8가구만  살고 있다. 
따라서 마을회관도 주령마을 쪽에 위치한다. 상대적으로 동지마을이 외진 곳에 위치해 있어 마을의 발전이 주령마을 위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은 동지(東池)와 주령(珠領)의 화합을 원한다.
동주마을 주민들은 마을 앞 도로에서 사고가 많이 발생해 현재 설치된 신호등 횡단보도를 폐쇄하고 사람과 농기계 등이 통행할 수 있는 지상 육교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육교는 설치되지 않고 있다.

양재생 기자 


양재생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기획특집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찾아오시는길
전남 광양시 사동로 2  |  대표전화 : 061-791-0911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전남 다 00181호  |  발행인 : 황망기  |  편집인 : 황망기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망기
Copyright © 2013 광양만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