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룡마을은 용이 승천하는 형국의 마을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조사된 바 있다. 사진은 위에서부터 마을전경, 용수정, 서형흠 효행비, 흥룡교, 마을회관 등이다.

광양 동천을 거슬러 옥룡면사무소를 지나면 설립 110주년이 넘은 대방교회가 나온다. 흥룡마을은 이 대방교회 우측에 있는 흑룡교를 건너면 나오는 마을이다. 
마을 진입로를 따라 100여m를 지나면 마을회관이 나오며 회관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의 정자나무가 있다. 여기서 더 안쪽으로 향하면 대방마을과 맞닿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용이 하늘로 오르려는 형국
흑룡(興龍)마을은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조사된 지역으로 기원전 8000년경에 이 지역에 사람이 살았음이 확인되고 있다. 
당시 마을역사는 알 수 없고 문헌상으로 마을연혁을 살피면 1600년경 광양현 북면(北面) 옥룡리(玉龍里)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룡면에 속했다.
흑룡마을에서 전해져 오는 이야기로는 1283년 지금의 평안도에서 공공덕이란 사람이 도사 한분과 산맥을 따라오다가 장차 이곳에서 용(龍)이 승천할 것이라 예견하고 자리를 잡고 정착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설에는 지금부터 320여 년 전 공(孔)씨라는 성을 가진 사람이 처음 입촌하여 마을을 형성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을이름 유래는 신라시대에 풍수지리에 형통한 어느 도사가 백운산에서 산맥을 타고 내려오다 이 마을 뒷산을 보고 용이 하늘로 오르려는 형국이므로 흥룡(興龍)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예로부터 이 마을에 인물이 많이 배출됐는데 그 연유는 용이 승천하기 위해 머리를 들었기 때문이라고 마을 주민들은 이야기한다.
구석기 시대 유물은 흥룡마을의 남쪽 구릉에 산포되어 있으며, 구석기시대 생활 도구로 추정되는 유물이 발견됐다. 
현재 유적이 있는 곳은 감나무 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구릉의 높이는 50~100m이고 면적은 약 9천여 평에 이른다.

■용수정과 서형흠 효행비
마을회관 바로 우측에는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는 용수정(龍水亭)이라는 정각이 있다. 
용수정은 이 마을 출신 서정수(徐廷洙)씨와 관련이 있다. 
서정수 씨는 애향심이 깊어 마을주민들이 복리증진에 공헌을 많이 한 인물로 평소 마을 앞에 정각을 세워 주민휴식처로 이용되기를 소망했다. 
하지만 그가 별세하자 그의 아들들이 그의 유지를 받들어 정각을 세우고 서정수(徐廷洙)의 자(字)를 따서 용수정(龍水亭)이라 하고 정각을 마을 주민에게 기증했다.
또 이 마을에는 부모에 대한 효성이 극진했던 서형흠(徐馨欽) 효자비가 있다. 
이 효자비는 마을회관 뒤쪽으로 10m만 가면 나오는데 서형흠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광양향교에서 추천하여 1905년 조정에서 정려를 명하니 문중에서 건립한 것이다. 
옥룡면 용곡리에서 태어난 서형흠은 성균관 제주 의(誼)의 후손으로 본관은 이천이다. 서형흠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을 섬김에 정성을 다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병상에 눕자 약초를 구하여 드리고 정성껏 간호했으나 병세가 악화돼 돌아가시자 묘 앞에서 움막을 짓고 3년간 시묘했다고 한다. 그런 그의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가 보호해 주었다고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이 비석은 양 기둥 사이에 비신을 끼어 놓은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비의 상부에는 팔작형 옥개를 얹어 놓았다. 
비의 전면에는 ‘孝子通仕郞 行童蒙敎官陞正三品通政大夫利川徐馨欽之閭(효자통사랑 행중몽교관승정삼품통정대부이천서형흠지려)’라 음각되어 있다. 

양재생 기자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