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西京永明寺(서경영명사)[1] 
                                         몽암 이혼

        서경의 영명사에 스님도 안 보여 
        절 앞의 강물만 유유히 흐르는데 
        뜰 안에 외로운 탑에 나루터엔 빈 배만.
        永明寺中僧不見    永明寺前江自流
        영명사중승불견    영명사전강자류
        山空孤塔立庭際    人斷小舟橫渡頭
        산공고탑립정제    인단소주횡도두

 

 

영명사와 부벽루는 고구려의 수도였던 서경을 대표하는 소중한 우리의 문화재다. 지금의 평양이다. 이곳은 조선시대에 선교양종 36본사 중 하나였으며, 승군을 통솔하는 승장과 평안남도의 절과 승려를 관리하는 총섭(摠攝)을 이 절에 두었다 한다. 이렇게 보면 굳이 시인이 아니라도 역사의 흔적 때문에 시상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영명사에 올라보니 스님도 보이지 않고 나룻터만 지키고 있는 배를 보면서 시상을 떠올려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산은 텅 비어 있고 탑만 뜰 안에 외로이 서있네(西京永明寺1)로 번역해본 율(律)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몽암(蒙菴) 이혼(李混:1252∼131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영명사에 올랐더니 스님은 보이지 않고 / 영명사 앞에는 강물만 유유히 흐르고 있네 // 산은 비고 탑만 뜰 안에 외로이 서 있고 / 사람은 없는데 빈 배만 나루터에 매달려 있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서경 영명사를 찾아서]로 번역된다. 작가는 평양 중구역 금수산 기슭에 자리 잡은 영명사를 찾았다. 고구려 광개토왕이 393년에 지었다는 아홉 개 사찰 중의 하나다. 평양지역 전승에 따르면 천손 주몽에 이 동굴에서 기린을 길렀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데서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은 행여나 하는 기대를 갖고 영명사를 찾았지만 스님은 보이지 않고 대동강 지류인 실개천만이 유유한 물결을 담아 흐르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인은 허무함을 느끼면서 적막함이 감도는 심회에 젖게 된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어쩔 수 없는 자연생몰의 현상이리라.
 화자는 흔적을 말해주는 탑만이 뜰 안을 지켜주며, 대동강 가에는 빈 배만이 나루터에 매달려 있다고 심회한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하늘을 날아가는 저 새는 어디로 가나 / 넓은 들에 동풍은 불어 그치지 않는데 // 지난일 아득하여 물을 곳 없어 / 연기 속 석양을 바라보니 시름뿐이네]라고 했다. 화자는 이제 지나간 옛일을 어디에 물을 곳이 없음을 떠올린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영명사에 스님 없고 강물만 유유하고, 산은 비고 탑만 외로이 빈 배 홀로 나룻터에’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몽암(蒙菴) 이혼(李混:1252∼1312)으로 고려의 문신이다. 1268년(원종 9) 급제해 광주참군이 되었다가 내직으로 들어가 국학학정이 되었다. 충렬왕 때 첨의사인·우부승지·부지밀직사사·문한학사승지 등을 지냈다. 1293년(충렬왕 19) 서북면도지휘사, 1295년 동지밀직사사가 되었다.

【한자와 어구】
永明寺: 영명사. 中僧: 스님. 不見: 보이지 않는다. 前: 앞. 전방. 江: 강물. 自流: 저절로 흐르다. // 山空: 산이 텅 비다. 孤塔: 외로운 탑. 立: (우두커니) 서 있다. 庭際: 뜰 가장자리. 人斷: 사람이 없다. 小舟: 빈 배. 작은 배. 橫渡頭: 나룻터에 매달려 있다. 나룻터에서 나뒹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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