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西京永明寺(서경영명사)[2] 
                                              몽암 이혼

        하늘 나는 저 새는 어디로 가는 건지 
        넓은 들에 동풍 불어 그치지 않았는데
        지난 일 물을 곳 없어 석양연기 시름 담네.
        長天去鳥欲何向    大野東風吹不休
        장천거조욕하향    대야동풍취불휴
        往事微茫問無處    淡煙斜日使人愁
        왕사미망문무처    담연사일사인수

 

 

고려 초 곽여(郭輿)란 사람이 영명사를 시로 읊었고, [고려사]에 숙종이 이 절과 흥복사(興福寺)에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어 이 절의 역사는 고려초 또는 통일신라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단다. 그리고 수많은 시인들이 이 절을 두고 잔잔하게 시를 읊었다. 청일전쟁 때 거의 모든 절이 소실된 것을 일제강점기에 재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하늘을 멀리 나는 새와 불어오는 동풍을 피부로 느끼면서 지난 일을 물을 곳에 없다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지난 일이 아득하여 차마 물을 곳이 없어라(西京永明寺2)로 번역해본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몽암(蒙菴) 이혼(李混:1252∼1312)이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하늘을 날아가는 저 새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 넓은 들에는 동풍이 불어 그치지 않고 있는데 // 지난일이 아득하여 물을 곳이 없어라 / 연기 자욱한 속 석양을 바라보니 모두 시름뿐이네]라는 시심이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었던 시심은 [영명사에는 스님 보이지 않고 / 영명사 앞에는 강물만 흐르고 있네 // 산은 비고 탑만 뜰 안에 외로이 서 있고 / 사람은 없는데 빈 배만 나루터에 매달려 있네]이라고 쏟아냈다. 영명사는 역사의 흔적 남아 있을 뿐 다른 말이 없다. 절을 찾았건만 스님은 보이지 않고, 보이는 건 세 가지 그림을 그려 보이는데서 시적인 배경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강물이 유유히 흐르고, 빈 탑만 외롭게 서 있으며, 빈 배만 나룻터를 지키고 있다고 했다. 그런가했더니 세차게 움직이는 두 가지에 그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하늘을 나는 새와 동풍이 불어 회오리 되어 그치지 않았다고 읊고 있다. 모두가 시인의 눈이 보이는 것은 시적 소재들뿐이다.
 화자의 심회는 영명사가 걸어와서 아득했던 질곡의 역정을 묻고 싶었는데 물을 곳이 없음을 한탄한다. 때는 저녁이다. 분주하게 저녁 공양(供養)을 준비하고 있을 지도 모르는 시기였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한적하게 넘어가는 석양을 바라보니 사무친 시름들이 겹겹이 쌓여왔다는 시심을 담고 있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하늘 나는 새 어디 갔나 동풍은 그치고, 지난 일 물을 길 없네 석양보는 시름만’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몽암(蒙菴) 이혼(李混:1252∼1312)으로 고려의 문신이다. 지밀직사사·세자원빈·밀직사사·전조판서·집현전대제학·수국사 등을 거쳐, 1307년 첨의시랑찬성사가 되었다. 원나라에 있는 충선왕에게 하정사로 가서 관리선발제도에 대하여 토의하고 관제를 개정했다.

【한자와 어구】
長天: 하늘. 去鳥: 날아가는 새. 欲何向: 어디로 가나. 大野: 넓은 들. 東風吹: 동풍이 불다. 不休 : 그치지 않다. // 往事: 지난 일. 微茫: 아득하다. 問無處: 물을 곳이 없다. ~인들 물을 곳이 없구나. 淡煙: 엷게 낀 안개. 옅은 안개. 斜日: 해가 비끼다. 使人: 사람으로 하여금. 愁: 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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