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初夏(초하) 
                                            연담 곽 예

        온 가지 꽃이 지자 신록은 파릇파릇
        매실 가지 가리키니 감흥이 새로워라
        곤한 잠 제격 일 텐데 꾀꼬리는 울어대네.
        天枝紅卷綠初均    試指靑梅感物新
        천지홍권녹초균    시지청매감물신
        困睡只應消晝永    不堪黃鳥喚人頻
        곤수지응소주영    불감황조환인빈

 

 

3월이면 봄이지만 봄 같지 않게 스산하다. 5월말 6월이면 여름이지만 또한 여름 같지가 않다. 이런 현상이 꼭 지구의 온난화 현상만은 아니다. 마음으로 느끼고 재촉하는 계절이 그렇다. 그래서 초봄, 초여름, 초가을이란 말을 쓴다. 시인도 자연을 무성하게 만들고 마음을 풍성하게 만드는 여름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겨울의 상징인 매실열매가 익어가는데, 깊은 숲에서 ‘어서 오라’는 듯이 부르짖고 있는 꾀꼬리 소리를 들으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꾀꼬리가 자주 불러, 나는 더 못 참겠소(初夏)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연담(蓮潭) 곽예(郭預:1232∼1286)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온 가지에 꽃 떨어지자, 여기저기서 신록이 파릇파릇하여 / 푸른 매실 가리켜보니, 감흥만이 새로워라 // 긴 낮을 보내기 에는 곤한 잠이 제격일진데 / 꾀꼬리가 저리 자주 불러, 나는 더 이상 못 참겠소이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초여름 어느날]로 번역된다. 꽃이 떨어지면서 잎이 돋는 것이 대체적인 경향이다. 목련도, 매화도, 철쭉도, 진달래도 꽃이 피고 진 다음에 순이 돋고 잎이 오른다. 작가의 눈에도 신록은 그렇게 여기저기에 야단법석을 떨었던 모양이었나니. 실록이 무르익어 갈 무렵에 곤한 잠이 제격인데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거리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꾀꼬리 울음소리에 잠을 청할 수 없었음이 시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은 여기저기에서 신록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어서어서 봄을 만끽하고 싶다고, 지난 여름에 같이 춤추면서 놀았던 나뭇잎들과 속삭이고 싶다고 하면서… 그런데 시인은 매실이 여간 정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고의 아픔을 딛고 눈 수렁 속에서 꽃을 피웠기 때문이리라.
 화자는 점심 후에는 낮잠 한 숨이 제격인데 여간 잠을 청하기 어렸다. 새로 돋는 순의 속삭임도 그랬겠지만, 유독 자주 울어대는 꾀꼬리 울음소리에 더욱 그랬으리니. 자연은 모든 생물체를 가만히 잠 재우기도 하고 흔들어 깨우기도 한다. 화자는 더는 못참겠다고 했다. 꾀꼬리가 자꾸만 부르고 있기 때문이었나니.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꽃 지니 파릇파릇 매실 감흥 새롭네, 곤한 잠 제격인데 나는 더 못 참겠소’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는 연담(蓮潭) 곽예(郭預:1232∼1286)로 고려 후기의 문신이다. 사람됨이 강직하고 담박하면서 곧았으며 소박하였다. 겸손하고 안락해 높은 지위에 오른 뒤에도 선비 때와 다름이 없이 똑같이 행동했다 한다. 1255년(고종 42) 전주사록에 임명되었다. 글을 잘 짓고 서법에도 능하였다.

【한자와 어구】
天枝: 온 가지. 紅卷: 꽃이 지다. 綠初均:신록이 고르게 어울리다. 試指: 시험 삼아 가리키다. 靑梅: 푸른 매실. 感物新: 감흥이 새로워라. // 困睡: 곤한 잠. 只應消: 다만 보내다. 晝永: 긴 낮. 不堪: 견디지 못하다. 黃鳥: 꾀꼬리. 喚人頻: 사람을 자주 부르다. 여기서 [人]은 시인 자신을 가리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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