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 있어 철의 사용은 아르메니아 지역의 히타이트족이 기원전 2천 년경부터 사용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이때 사용한 철은 용광로에서 직접 얻은 것이 아니라 연철의 표면을 침탄법으로 열처리하여 강철로 변화시킨 질이 낮은 것이다.

이 기술도 히타이트족이 계속 주조법을 독점하다가 그들이 멸망하자 여러 지방으로 퍼져나갔는데, 철이 생산된 지 거의 10세기가 지난 기원전 12∼10세기가 되어서야 이란, 팔레스티나, 메소포타미아와 지중해 동부에서 강철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고대 유럽에서 생산된 철기는 전부 연철이고 주철은 그보다 늦어 14세기경 독일의 라인 지방에서 처음 대량으로 생산되었다.

중국에서의 철기 사용은 기원전 1100년경으로 추정되며 기원전 7세기인 춘추전국시대에 주조법이 등장했는데, 이는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러서야 중국에서 진정한 철기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철기시대가 언제 시작되었느냐는 기원 문제는 대체로 두 가지 설로 나뉜다.

그 하나는 중국 전국시대(기원전 475∼221년)에 ‘명도전(明刀錢)'과 함께 유민들이 한반도로 유입되면서 철기문화가 들어왔다는 설이며, 다른 하나는 기원전 108년 한무제가 고조선을 침략할 때 한나라의 금속문화가 도입되었다는 견해이다.

한반도에서 철기시대의 시작은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 전후까지의 시기로 이 때가 청동기와 철기를 함께 사용한 초기철기시대이다.

한반도의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에는 일부 저습지에서 주식인 벼농사가 시작되고, 철제 농기구가 보편화되면서 농업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되고 가축 사육도 증가하게 된다.

철을 얻기 위한 광석 채굴에서 도구 제작에 이르는 공정에는 대규모의 노동력과 전문지식이 요구되어 여러 가지 사회문화의 변화가 일어났다.

그 결과 철기시대에는 청동기시대 이래 계속된 사회 조직화와 계급분화가 더욱 빨라졌고 이로써 고대국가가 완성되었다. 초기철기시대에는 철기를 점차 한반도에서 직접 생산했으며, 청동기시대의 생활도구였던 석기는 사라지고 청동기는 의례용 도구가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철기는 중국과 가까운 북부지역에 먼저 전파되어 남쪽으로 퍼졌는데, 남부지역에서는 한사군이 만들어진 기원전 100년 무렵부터 철기가 널리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문헌에 나오는 위만조선은 철기문화를 바탕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철기 유적으로는 압록강 중류 지역과 평안도 서부 지역에서 기원전 300년 무렵의 중국 전국시대의 화폐인 명도전과 철기들을 발견했고, 평안북도 위원군 용연동에서는 중국 연(燕)의 제품으로 보이는 철도끼, 철화살촉, 철창 등과 함께 철제 낫, 반달칼, 괭이, 보습 등의 농기구를 발견됐다.

이 때의 철기는 모두 쇠를 틀에 부어 주조한 농기구이고, 무기는 청동기를 계속 사용했다.

철기 도입 시기의 유적은 주로 무덤형태로 남아 있는데, 청동기와 철기를 함께 껴묻은 당진 소소리, 부여 합송리, 장수 남양리 등의 유적이 있다.

특히 의창 다호리 고분군에서는 매우 화려한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통나무를 반으로 잘라 만든 목관과 중국 화폐 및 여러 가지 청동기와 철기, 칠기 등을 사용할 때의 모습 그대로가 출토됐다.

이보다 약간 늦은 시기의 유적이지만, 광주신창동의 소택지유적과 토기 가마, 사천시 늑도, 창원 성산, 해남 군곡리의 조개더미와 춘천 중도, 수원 서둔동, 하남 미사동, 명주 안인리 등의 집자리의 생활유적은 철기문화 초기의 생활모습을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황망기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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