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흥남 (한려대 교수/ 교양과)

 감성의 힘에 대해 새삼 생각해 본다. 이성과 감성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 더할나위없이 좋겠지만 대체로 좀 더 감성적인 경우 이성의 힘은 상대적으로 좀 약한 경향을 띤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아침 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져서 따사로움이 정겹고 반가운 계절이다. 주말에 근교의 산을 오르다 보면 땀이 좀 나건만 그래도 햇빛을 받고 싶다. 특히 저녁 무렵엔 벌써부터 따뜻한 ‘아랫목’이 그립다.

모두(冒頭)에 이런 감성에 대해 꺼내는 것은 함민복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문학세계사, 2014. 8)을 소개하고픈 마음에서다. 함민복 시인은 가난한 시인이다. 강화도의 한적한 곳에서 전원과 벗하면서 한땀 한땀 수를 놓듯이 시를 짜내고 있다. 비평가들이 함민복의 시를 호평도 하지만 대중들이 그의 시집을 즐겨 찾는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다. 그의 시는 이른바 감성이 옴씰하게 묻어나는 서정시들이 주류를 이룬다. 살기 팍팍하고 삶이 고단할수록 감성이 묻어나는 시들이 힐링하는데 도움이 되는 걸까. 비교적 길지 않은 시들로 우리의 마음을 영롱하게 정화시키는 그의 시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픈 마음에서 ‘그리움’을 먼저 소개한다.

 

천만 결 물살에도 배 그림자 지워지지 않는다(64쪽)

 

짧아서 좋다. 짧지만 품은 뜻은 그윽하고 깊다. 우리가 ‘그립다’ 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될 것 같다. 필자는 함 시인의 개인사는 잘 모른다. 마흔이 넘어 늦게 결혼했다고 들었다. ‘부부’를 한편 더 감상해 보자.

 

긴 상이 있다/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좁은 문이 나타나면/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걸음을 옮겨야 한다/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다 온 것 같다고/먼저 탕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한 발/또 한 발/

- < 부부> 전문(21쪽)-

 

인용한 시를 통해 우리는 부부로 살면서 다투지 않는 법을 넌지시 일깨워 준다는 걸 감지하게 된다. 부부로 살면서 싸움이나 갈등이 전혀 없기는 쉽지 않겠지만 자주 싸우면서도 행복한 부부는 많지 않을 게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 주면서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흔히들 부부로 살다 보면 조금씩 닮는다고 한다. 필자 역시 어느덧 올해로 결혼 25주년째 이른다. 그래서 위의 시가 가슴에 더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서정이 묻어나고 감성이 밴 시인도 우리의 정치 현실을 보면 시인도 좀 짜증이 나는가 보다. 아래의 시는 다소 격정을 토해내고 직설적이다.

 

국민들을 위한다면/국민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팔았으면/아무리 최선을 다해 일을 하셨어도/진정 국민들을 위하였다면/자신이 부족하였음을 느끼셨을 텐데/부족하여/미안하여/재산을 다 헌납하시거나/아무도 모르게 선행으로 다 쓰셨어야 옳았을 텐데/재산이 늘었다니요!/ -- 중략--

 

국민들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말을 파신 분이나/말을 파실 분은/ 중생들이 다 극락왕생할 때까지/성불하시지 않겠다는/기호 108번/지장보살님 꼭 한번 생각해주세요//

-<기호 108번>일부 (86-87쪽)

개인적으로 정치인을 포함해서 우리 사회의 지도충이 일반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사갈시하는 풍토는 득보다 실이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건강한 사회의 모델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정 시인들마저 사회 지도층을 풍자하고 야유하는 사회는 불길한 징조의 서막이다. 그래도 다행스럽고 위안이 되는 것은 위와 같은 시가 비교적 많지 않다는 점이다.

가을 햇살이 정겹고 반가운 이 계절에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을 1-2권쯤 가까이 해보는 여유도 ‘강추’하고픈 마음이다. 감성이 주는 힘과 힐링을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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