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바위~ 보~

진사람 술래

가위 바위 보

전봇대에 붙은 술래는

손등에 얼굴을 대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꿈쩍 않는 아이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잽싸게 움직이는 아이들

“야! 석윤이 나와! 나 다 봤어!”

“빨랑 나와!”

“절대로 나 안 움직였다고오~!”

떠들썩한 골목길

아이들 얼굴엔

무궁화 꽃이 활짝 피었어요

 

 

 술래가 눈을 감고 열 글자(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는 동안 나머지 아이들은 술래에게 들키지 않도록 움직여 술래에게 근접해가는 놀이입니다. 이 놀이의 유래는 남궁 억(1863년~1939년) 선생이 만든 놀이라는 유래가 가장 강력하게 전해지고 있어요. 남궁 억은 우리나라 무궁화 보급에 큰 힘을 쓴 사람으로서 2000년 1월의 문화인물로도 선정된 민족 운동가인 그는 '우리나라 무궁화 꽃 수놓기'운동을 주도한 인물로서 많은 가구에 무궁화 수틀보급했을 뿐 아니라, 다른 여러 주민과 함께 무궁화를 심어 민족정신을 고취시켰어요. 이로 인해 왜경이 뽑고 불태워버린 무궁화만 해도 8만 주가 넘었다고 해요. 어쨌든 이 일로 인해 무궁화 심는 것은 '사상 불온 죄'로 지목되었고, 그 당시 무궁화를 심기만 해도 죄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무궁화를 못 심게 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켠 왜경들을 조롱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놀이라고 해요. 음률과 리듬은 그 당시 있었던 일본의 놀이 '오뚝이가 넘어 집니다' [다루마상가고론다]의 영향을 받아 어쩔 수 없었지만, 이처럼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생활의식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일제강점기의 일본은 우리 민족의식에서 무궁화를 없애기 위해 무궁화를 피의 꽃이라 하여, 쳐다보지도 못하게 했고 무궁화를 심을 때는 쓰레기더미나 냄새나는 화장실 등에 심도록 하여 무의식 속에 우리민족을 자괴감에 빠지도록 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무궁화가 우리 국민과 애환을 같이하며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확고히 부각되었고,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착취와 억압으로 고통 받던 우리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겨레의 꽃으로 국민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글 김미정 / 삽화 유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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