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평소 광양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예술분야도 더욱 풍성하였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시를 비롯해서 유관기관에서 광양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발굴하고 조명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으며 동시에 이를 권역별로 관광·문화콘텐츠화 한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이런 점에서 <광양만신문사>의 주관으로 이균영의 생가를 주변으로 해서 저태길을 조성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하는 각종 행사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광양에서 배출한 문인들이 다수 있지만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이균영(1951-1996)을 주목하고 싶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궁극적으로 작가에게 고향은 어떤 대상인가? 
앞의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듯이, 이균영은 가족, 고향, 사랑, 도시, 역사 등 다양한 주제를 서사화했다. 그는 1996년 11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단편 28편, 중편 5편, 장편 4편, 동화 10편 등을 창작하였는데, 광양과 그 인근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전원소설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작가 이균영은 자신의 고향인 광양에 대한 애착이 남 달랐다는 점을 그의 소설을 통해서도 짙게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이균영의 신춘문예 당선작 <바람과 도시>를 비롯하여 10여 편이 수록된 소설집 『바람과 도시』에 이런 고향의 정서가 짙게 묻어 있는 작품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단편 「터」(1978)를 비롯한 「풍화작용」(1978), 「불붙는 난간」등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열거한 작품들은 산업화와 도시화 시기 농촌 사회의 삶이 그려져 있다. 특히 「터」는 「뿌리 깊은 터전」으로 발표되었다가 이후 개제된 작품으로 ‘장도’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도 다소 흥미롭다. 이 작품은 광양을 배경으로 하여 신분 사회의 잔재로 인한 갈등과 새로운 사회를 위한 화해, 그리고 전통의 계승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은 가업을 이으며 대대로 고향에 거주해온 윤익상과 신분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떠나 상업 활동을 통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한 이상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설의 서두는 마당가에 떨어진 오동잎을 쓸어 모으고 있던 윤익상에게 이상노가󰡒솔개 병아리 덮치는 짝으로󰡓(『바람과 도시』, 책세상, 2007, 239쪽) 달려들어 다짜고짜 뺨을 때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같은 지역에 살았지만 깊은 인연이 없었던 두 사람이 이처럼 어느 가을날 서로 갈등을 빚게 된 직접적인 까닭은 은장도에 얽힌 민간 신앙 때문이다. 저간의 사정은 이러했다. 
마을에서 아들 낳기를 학수고대하던 집에 드디어 아들이 태어났는데, 애기 머리에 피가 묻어 있었다. 민간 풍습에 따르면, 이럴 경우 액풀이를 해야만 아이의 무병장수를 기대할 수 있다. 전통사회에서 액풀이 방식은, 패도를 만들어 패도 자루에 태어난 아이 이름을 새긴 후 그것을󰡐성 밑 사람󰡑에게 가져다주면, 그 사람(백정)이 소를 잡고 나서 피가 식기 전에 그 패도를 가지고 또 한 번 찔러야 액을 풀 수 있다는 것이다. 고향 별량을 떠나 광양으로 이주하여 상인이 된 이상노는 백정이었던 자기 과거가 온전히 잊힌 줄 알고 있었으나, 마을 사람은 이를 알고서 액풀이를 위해 이상노의 집 마당에다 은장도를 던져 놓았던 것이다. 이에 분개한 이상노가 은장도를 만들어 준 윤익상의 집으로 쳐들어가 패악을 부리고 이후 윤익상과 이상노는 자신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는 내용이 소설의 중심 서사를 이룬다.  
「보리」는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세 남매의 성장 과정을 담은 소설이다. 이 소설은 세 남매가 도시와 농촌으로 흩어져 살다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고향땅에 모여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고 친밀감을 회복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슬픔을 누르고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부자(父子)의 모습이 간결한 단문을 통해 인상 깊게 그려져 있다. 자식들이 도시에서 맞이하게 될 험난한 세상살이에 강인한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인동을 상징하는 보리로 표상된다. 또한 “형제는 하얗게 꽃이 핀 메밀밭을 지나 푸른 하지감자와 하양․노랑․보랏빛이 핀 장다리밭을 헤치며 들로 나갔다. 바람이 불면 익은 보리가 금빛 물결을 일구었다”.(「보리」, 『멀리 있는 빛』, 정음사, 1986, 238쪽)는 대목처럼 봄날의 들녘을 한 폭의 그림처럼 묘사해 놓기도 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 듯 고향 선배인 정채봉은, 이균영의 소설이 “시적 구조를 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균영의 소설 전반에서 이런 시적인 대목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이균영의 소설은 목가풍의 시공간을 지니고 있고, 작중 인물들은 자연의 주기적이고 순환적인 리듬에서 성장의 자양분을 얻는다. 땅에 터 잡은 이들은 고향을 지키며 묵묵히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나가고, 고향을 떠난 이들은 유년 시절 고향(자연)에서의 추억을 통해 산업 도시 속에서 뿌리 뽑힌 존재로 떠돌지 않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이균영의 소설에서 고향은 그들 삶의 시원이며,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기점이 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광양 출신의 작가 이균영이 남긴 문학의 궤적과 그의 문학정신이 제대로 조명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와 지역민의 관심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chn0075@hanmail.net   
 
전흥남
한려대 교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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