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開城)에 양합촌(兩合村)이란 마을이 있었던 모양이다. 도심이 발달하고 농촌 인구가 적어지면서 행정 개편으로 시골이 합병되는 일은 자주 있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개성에 있었던 ‘양합촌’은 두 개의 마을을 합했다는 뜻이겠다. 아랫마을에 없는 것들이 윗마을에는 있고, 윗마을에 없는 미담이 아래 마을에 있게 마련이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줄다리기를 하면서 합화의 한 마당을 만들기도 했다. 시인은 맑은 시내 구불구불 모낸 논에 물을 대니, 정오가 되어 집집마다 이제 새참을 내어온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송아지 풀 숲 속에 몸을 묻고 졸고 있네(開城兩合村)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맑은 시내 구불구불 모낸 논에 물을 대니 / 정오가 되어 집집마다 이제 새참을 내어오는구나 // 외길뿐인 산마을에 뽕나무밭 가에서는 / 송아지 풀 숲 속에 몸을 묻고 졸고 있네]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모낸 논에 물을 대니 이제 새참 내어 오고, 뽕나무밭 가에서는 송아지가 졸고 있네’라는 화자의 상상력이다.
 
 
開城兩合村(개성량합촌)
  / 매천 황현
모낸 논 물을 대니 구불구불 맑은 시내
정오에 집집마다 새참을 내어오네
외길 뿐 뽕나무 밭에 졸고 있는 송아지.
淸溪百折灌秧田   田餉家家出午天
청계백절관앙전   전향가가출오천
一路山村桑柘外   童牛身沒草中眠
일로산촌상자외   동우신몰초중면
 
위 시제는 [개성의 양합 마을에서]로 의역해 본다. 양합 마을엔 아름다운 전설이 남아 있을 수 있고, 윗마을 쇠돌이와 아랫마을의 순이가 아기자기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물레방아 뒤편에서 맺은 약속과 사랑 때문에 부모님의 극구 반대로 이루지 못한 경우 극단의 선택을 했던 서글픈 이야기도 있고, 윗마을 홀어미와 아랫마을의 홀아비가 밤이면 몰래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아름다운 미담도 있을 수 있다. 전설이 되고 미담이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살짝 만날 필요 없이 번번한 거리에서 눈짓과 대화로 만나게 된다. 두 마을이 시대적인 배경에 밀려 통합되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같은 되물음을 읊어대며 상승곡선이란 시상의 멋을 우려낸다. 맑은 시내는 구불구불해 모를 낸 논에 물을 대었으니, 정오가 되면 집집마다 이제 새참을 내어온다는 풍성한 농촌의 절경을 독특하게 그려낸다. 새참의 맛은 꿀맛이다. 들을 걷는 사백들도 부르고, 쟁기질에 여념이 없는 머슴까지 모두 불러 한바탕 잔치를 벌이는 선경이겠다.
화자는 이러한 상황일망정 즐겁게 바라보면서 일경의 후정은 도톰해 보인다. 외길뿐인 산마을의 뽕나무밭 가에는, 송아지가 풀 숲 속에 몸을 묻고 졸고 있다는 엉뚱한 것 같지만 정중둥(靜中動)이나 동중정(動中靜)이란 시적인 멋의 한 가락을 우려낸다.
 
【한자와 어구】
淸溪: 맑은 시내. 百折: 구불구불. 灌秧田: 모낸 논에 물을 대다. 田餉: 새참을 내 오다. 家家: 집집마다. 出午天: 정오가 되다. // 一路: 한 길. 山村: 산촌. 桑柘外: 뽕나무밭가. 童牛: 송아지. 身沒: 몸을 묻다. 草中眠: 풀 숲 속에 잠자다.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