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영인 감독
"축구 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비록 필드에서 뛰지는 못하지만 장래가 기대되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 운동장을 누비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합니다.”
 
광양여고 축구감독 권영인(28)씨.
 
12살 때 부터 축구를 시작한 권 감독은 한 때 전국의 고교축구선수 1천 명 중 1,2위를 다투는 촉망받는 유소년 국가대표 선수였다.
 
어릴 적 축구가 하고 싶었으나 어떻게 하면 할 수 있는지 방법을 몰라 학교운동장 구석에서 또래 선수들이 공을 차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던 권 감독은 아버지와 친분이 두터웠던 정구호(전남드래곤즈 홍보부장)씨의 손에 이끌려 축구에 입문하게 됐다.
 
광양제철남초등학교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제철중, 제철고에서 뛰어난 기량을 자랑하며 유소년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렇게 좋은 성적을 보여주며 활발한 활동을 하던 권 감독에게 첫 시련이 찾아왔다.
 
고등학교 3학년, 한창 대학과 실업팀 사이에서 진로 선택의 고민을 하던 중요한 시기에 오른 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어 더 이상 뛸 수가 없게 됐다.
 
“수술을 하고 집에서 쉬는데 많이 힘들었습니다. 부상 부위가 아픈 것도 아픈 거였지만
앞으로 축구를 할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좌절과 불안감에 우는 날이 많았던 어두운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힘든 시간을 함께 해 준 친구들이 있어서 잘 견뎌냈습니다. 진로가 결정된 지동원, 윤석영 선수는 힘든 저를 서울로 불려 올렸고 배재대 입학하기 전 3개월 동안을 함께 지내면서 재활운동도 시켜주고 다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었습니다.“라며 뜨거운 우정을 나눠 준 친구들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부상도 회복이 되어 ‘득점왕’을 누릴 만큼 맹활약하던 중 실업팀을 결정해야 할 대학 4학년 때 두 번 째 시련을 겪어야 했다. 다시 같은 부위에 부상을 입게 된 것. 
 
권 감독은 또 다시 좌절했지만 고교시절 감독의 도움으로 국내의 한 프로축구단에 입단해 재활치료와 운동을 병행하다 태국 실업팀으로 이적했다.
 
부상의 아픔을 이겨내고 태국에서도 열심히 활동했지만 권 감독은 또 다른 변수와 싸워야 했다. 이번엔 허리디스크가 말썽이었다. 수술을 한 권 감독은 결국 눈물을 머금고 현역생활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의 좌절로 ‘아픈 만큼 성숙해진’ 권 감독은 더 이상 실망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필드에서 뛸 수는 없으니 지도자가 되어 좋은 선수를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해서 권 감독은 2015년에 대한민국 고교여자축구 강자 광양여고의 코치로 오게 됐고 2년 만에 감독이 됐다. 권 감독이 코치로 왔던 그 해 광양여고는 축구단 창단 24년 만에 첫 우승을 거두는 성과를 거뒀다.
 
“중요한 시기에 입은 부상으로 힘들게 선수생활을 해야 했고 그 후유증으로 대학축구도, 실업축구도 이제 더 이상 잘하지 못하는 범주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운동하는 것이 고통스럽게 느껴지기 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선수가 아닌 지도자의 길을 선택하고 매일매일 필드에서 어린 선수들과 땀 흘리며 뛰다 보면 그 동안의 모든 고통과 아픔이 사라집니다.”라며 “시합이나 전지훈련을 나가면 열흘이상 씩 집을 비우는데 이제 막 돌 지난 아이의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아내에게 많이 미안할 뿐입니다.”라고 말한다.
 
감독이 되어 어깨가 무겁다고 말하는 권영인 감독은 “성적은 연습량과 비례하기 때문에 아이들을 더 많이 훈련시키고, 또 더 많이 힘들게 하면 좋은 성적을 낼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기량을 잘 닦아 더 많은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게 하고 또 실업팀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오랫동안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한다. 
 
권 감독은 그 누구보다 부상으로 인해 겪게 되는 아픔과 좌절을 잘 알기에 선수들을 무척 아낀다고 한다.
 
김영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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