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치루고 난 다음부터 귀에 듣기 좋은 소식들이 우리를 즐겁게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서 비롯된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된 여러 보도와 관련된 토론들은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급박하게 언론 앞면을 장식하는 보도를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고, “이게 나라냐?”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거냐?”라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다. 정말 나라꼴이 어떻게 되는건가 걱정할 때가 많았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인하여 한국을 배제(排除?)한 나머지 급속하게 돌아가는 의미심장한 동북아의 긴박한 정세는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라가 왜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았다.
이런 와중에 文 대통령 취임 일성으로 일자리 추진정책에 따른 희망찬 보폭과 서민들과 애환을 같이 하려는 크고 작은 광폭 행보들이 우리를 즐겁게 했다. 고른 인재 등용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려는 듯 젊은 피 수혈로 인해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삼천원짜리 국수를 서슴없이 드시는가 하면, 육천 원~팔천 원짜리 국밥과 생고기를 웃으면서 드시는 서민 대통령상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그 정신을 신성시하고 아름다운 수혈은 호남이란 지역을 떠나서 온 겨레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다. 아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민족과 해외에 살고 있는 교민들의 마음까지 포근하게 적시어주었음은 분명하다 하겠다.
모든 국민의 관심사로 여겨질 수 있는 헌법 개정도 집권 초기에 다독이겠다는 야심찬 발표를 망월동 영령들 앞에서 다짐이라도 하는 듯 발표했었고, 5,18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을 헌법 전문에 넣겠다는 큰 그릇까지도 가득 채워주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죽은 자들의 함성이자 산 자들에게 부탁하는 애절한 하소연이 고스란하게 담겨져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제창을 못하게 하는 지 불운을 담아 10여 년간 혹사당해야만 했을까? 우리들 가슴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취임 일성부터 전화를 통한 다자외교를 벌이는 슬기를 文 대통령은 보여 주었던가 싶더니만 재빠르게 우방 각국에 특사를 보내서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는가 하면, 외국정상을 만나기 위한 초석을 깔고 있다. 이는 외국 정상을 만나기 이전에 그들 나라 정상의 의중을 미리 알고 외교관계의 튼튼한 초석을 깔겠다는 속 깊은 심사를 파헤쳤다. 이를 알고 있는 국민들은 취임 10여일에 지나지 않았지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것은 이런 점들 때문이었으리라.
흔히 초심(初心)을 잊지 말라고 한다.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역대 대통령들은 용두사미가 된 적이 많았음도 우리들은 보았다. 처음은 그럴 듯 하다가도 끝에 가서는 흐지부지한 초라한 성적표들이 그랬었다. 청와대 문을 열고 들어갈 때는 기대에 찬 마음이었지만, 문을 닫고 나올 때는 아무 것도 짊어지고 나오지 못하는 허탈한 모습들이 우리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사심(私心)은 사특(邪慝)을 불러드린다 했다. 청와대 입성 전 우리 文 대통령은 “빈손으로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꼭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천년의 역사를 생각하는 우리 대통령이어야지, 10여년의 영화(榮華)를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대통령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다. 치적이 우수하고 우수하지 않는 것은 역사가 평가하리라 생각되지만. 검은 손으로 당기는 부당한 거래는 시간문제란 교훈을 새겨야할 일이다.
문화계 인사들은 우리의 미래를 예술로 승화시켜 백년과 천년의 역사를 곱게 남기실 분들이다. 어찌 이들에게 블랙리스트라는 불명예스런 멍에를 씌울 수가 있겠는가. 올바른 세계관과 역사관을 갖고 있는 문화계 인사들이 잠시 정책에 반하는 ‘왼손을 들었다’고 해서 붉은 색으로 체크(√)한 나머지 불이익을 주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간곡함까지 드리고자 한다.
차제에 나는 文 대통령에게 간곡함이 담긴 읍소(泣訴) 한 가지를 드린다. 우리 문학은 현대문학과 고전문학으로 나뉜다. 말 그대로 현대문학은 한글로 쓰여 진 “시, 시조, 수필, 소설, 평론”과 같은 장르의 문학인 반면, 고전문학은 한자 한문으로 대변된 운문과 산문이 있었다. 한시는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바, 관직에 나아가려면 한시를 통해 등과했을 때만이 관가 진출이 가능했다. 법학, 행정학, 의학 등을 공부하는 전문직이 아닌 오직 한시만으로 등과하여 [문관과 무관]이 되어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런데 해방 이후 표음문자인 한글과 영어의 득세로 인해 표의문자 문학인 한자 한문으로 산출된 [한시]를 익히려는 풍토가 전멸된 상태다.
나는 이를 다음 두 가지 면에서 생각해 본다. 첫째는 한자 한문을 통해 우리의 언어와 문자의 정수(精髓)인 한시 문학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고, 둘째는 좋든 그르든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틈바구니에 존재한 한자문화권 나라다. 그들이 쓰고 있는 문자(정자, 약자, 간자 등)를 알아서 국제화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미국은 불과 200년 역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초등학생은 물론 유치원에 다닌 원생들까지 미국의 역사를 원문으로 잘 읽고 해독하여 말할 줄 안다. 이에 반해 우리의 초등학생은 물론 대학생까지도 한시는 물론 제 이름과 부모 이름은 물론 상용하는 말의 뜻을 전혀 모른다. 절름발이 교육을 받은 탓이다. 이런 시대적 현실을 절감한 나머지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교육을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더불어 [한시]를 읽고 해독할 수 있는 자질 넘치는 우리 사회학적 분위기를 등에 타고, 중국과 일본의 젊은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문학적 분위기를 조성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장희구박사(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 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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