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이타현립 미도리카오카고등학교의 디자인 수업 교실 모습. 예술고등학교 신축 전에 세부전공을 확정해 전공의 특성에 맞는 시설을 설계에 반영해 건축해야 한다.

기존 예술고와의 정글 경쟁 안돼… 학교 신축 전에 새시대 흐름 맞는 전공 확정해 시설 반영 필요

오이타현의 주도인 오이타시 인근에 소재한 벳부시는 온천관광지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벳부는 온천뿐만 아니라 죽공예로 예로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오이타현은 일본 내에서 참죽으로 알려준 큰 대나무가 가장 많이 생산되는 지역인데, 벳부의 죽세공업은 이러한 지역적 특성 때문이라 할 것이다.

벳부에는 예술고와 달리 죽세공을 산업적 측면에서 가르치는 곳이 있다. 우리의 폴리텍대학과 유사한 오이타 현립 직업능력개발학교이다. 오이타현이 직업능력 개발학교는 오이타시와 사이키시, 히타시, 벳부시 등 4개소에 위치하고 있는데, 벳부시에 소재한 훈련원은 죽공예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다.

벳부시에 소재한 오이타 현립 죽공예 전문 훈련원은 2년 과정으로 운영되는데, 입학자격은 고등학교 졸업 이상의 학력을 지닌 18세 이상 39세 미만의 사람으로 매년 12명을 선발한다.

일단 입학하면 4월부터 2개월간은 대나무를 다루는 작업만 하게 되는데, 수강생들은 이 기간 동안 재료의 특성을 읽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6월부터 교수진들의 지도로 본격적인 제품만들기에 돌입하는데, 일반적인 대나무바구니를 한 달에 4개씩 완성하게 된다고 한다. 하나의 과제물이 완성되면 다른 과제물로 넘어가게 되는데, 각각의 과제들은 대나무를 엮는 방법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1년간 8종류의 과제를 소화하게 되는데, 교육생들은 이 과정에서 평균 50개 정도의 작품을 만들어보게 된다.

훈련생들은 매주 5일씩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수업을 받게 되는데, 수업은 재료의 특성과 재료를 다루는 도구, 도구의 개발, 죽공예의 역사 등과 같은 이론교육을 병행 실시한다.

2년차부터는 이러한 수업에 마케팅 기법 과정이 추가된다고 한다. 2년차부터는 과제물을 만드는 방식이 달라진다. 1년차 교육생들이 교수진들의 지도에 따라 과제물을 제작하게 되는데, 2년차부터는 교수들은 기본적인 원리만 지도하고, 교육생들 스스로 디자인을 해 창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2년차부터는 본격적인 창작품을 만들어 내게 되는데, 2년 과정을 수료한 교육생들은 50% 이상이 창업을 통해 자영업자로 활동하게 된다는 것이 훈련원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나머지는 죽공예 관련 회사에 취업한다는 것.

2년 과정을 통해 창업까지 하는 것에 대해 훈련원 관계자는 “기존 장인들과 비교해 작업 속도나 품질 등에서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스스로 제품을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능력을 길러주고 있다”며, “소수이기는 하지만, 졸업 후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고 소개했다.

벳부에 소재한 죽공예전문훈련원은 일본내 200여개의 직업능력개발학교 중 유일하게 죽공예를 가르치는 훈련기관이어서 죽공예에 관심이 있는 일본 전역에서 교육생들이 오고 있는데, 12명의 올해 신입생 중 8명 타 현 출신이라고 한다.

 

▲ 오이타현 벳부시에 소재한 현립직업능력개발학교의 수업 모습. 벳부에 소재한 이 교육기관에서는 죽공예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일본 유일의 교육기관이다.

예술고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죽공예 훈련원을 언급하게 된 것은 지역 특산품을 산업 및 예술과 연결시키는 교육과정을 소개하고 싶어서이다.

광양만신문은 그 동안 국내외 예술고들의 운영현황과 실태 등을 알아보았다.

기존 지방 예술고들이 학령인구 감소와 예술교육 기피로 인해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할 때 광양에 설립이 추진되는 동부권 창의예술고가 성공적으로 설립, 운영되기 위해서는 신입생 확보가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기존 예술고들의 미달사태에도 불구하고 예술고 설립이 추진되는 배경은 전남 동부권지역에 예술교육기관이 전무하고, 여전히 예술교육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수요가 있다는 점이다. 

동부권지역 예술교육 희망 학생들을 동부권 창의예술고가 모두 흡수할 수 있다면 신입생 충원은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서는 그만한 유인여건을 갖추어야 한다.

국내 지방예술고에 대한 취재를 통해 기존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지방예술고들이 신입생 확보에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자립형 사립고 형태로 운영되는 기존 예술고들의 경우 공립고는 물론 일반 사립예술고보다 수업료 등이 훨씬 비싸지만 교육청 등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해 시설이 노후화되어 교육여건이 명성에 비해 뛰어나지도 않다는 것이다.

동부권 예술고의 경우 신축을 통한 학교 설립이 추진되기 때문에 오히려 기존 예술고보다 더 나은 교육환경을 갖출 수 있으며, 광양시가 약속한 재정지원은 학교의 교육여건을 크게 개선시키는데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방예술고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부강사 수급 문제 역시 광양시의 재정지원은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공립학교의 강사수당 지급 수준에 한계가 있지만, 지자체의 재정지원은 우수한 강사 확보를 위한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학과를 설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전남도교육청은 동부권 창의예술고에 음악과와 미술과를 설치,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예술교육의 특성상 음악과와 미술과라 하더라도 세부전공은 훨씬 세분화된다. 예술고에 어떤 전공학과를 설치할 것인가의 문제는 학교 신축 이전에 최종 결정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과의 특성에 부합하는 시설을 신축과정에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세종시교육청이 세종예술고 설립에 앞서 각종 설명회와 학부모 및 학생들의 여론수렴과정을 거쳐 전공학과를 결정한 사례는 전남도교육청이나 광양시가 눈 여겨 보아야 한다.

신설 예술고에 설립할 학과와 관련, 정현복 시장은 “순수예술만 하여고 하면 어렵다. 실용예술을 가미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며, “K 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용음악과를 설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기존의 클래식음악교육 만으로는 신입생 확보를 둘러싸고 기존 예술고들과 사실상 제로섬 게임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시대적 요구에 따른 것이고, 일부 예술고들이 실용음악과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지만, 고등학교 과정에서 대중음악을 가르치는 실용음악과를 설치하는 것이 얼마나 타당성을 가질지, 또 그렇게 될 경우 그에 걸맞는 교수진을 확보할 수 있는가이다.

기존의 예술고들이 설치해 운영하고 있는 학과들을 고스란히 설치할 경우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는 예술고등학교들에 또 다른 경쟁학교가 하나 신설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학과 설치는 기존 지방의 예술고들이 신설 예술고 설립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5년 기준, 광양시를 비롯한 순천과 여수지역 중학교 졸업생 중 다른 시군의 예술고로 진학한 학생은 총 37명이다. 지역별로는 광양시 9명, 순천시와 여수시가 각각 14명이다.

광양만 국한해 두고 볼 때 2015년을 기준으로 최근 3년간의 예술고 진학생은 2013년 13명, 2014년 14명, 2015년 9명으로 매년 10명 내외의 학생들이 예술고를 진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지역내 일반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예술계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예술고가 신설될 경우 신입생 자원은 더 많아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역내 예술교육에 대한 일정부분의 수요가 있다고 하여 기존예술고들과 동일한 학과를 설치해 운영하는 것은 예술교육의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신입생 확보를 위한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도록 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술고 관계자들은 예술고를 신설해야 한다면 4차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는 새로운 개념의 학과를 설치해 예술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공립예술고 신설에 있어 또 한가지 감안해야 할 점은 학생선발방식의 문제이다.

일단 대부분의 예술고들은 전국단위로 학생들을 모집하고 있고, 광양에 설립될 창의예술고도 전국단위 학생모집이 기본 방침이다. 

그렇지만, 지방에 공립예술고를 신설하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지방학생들의 예술교육 수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것이다. 

전남도교육청이 운영하는 공립예술고이고, 광양시가 재정지원을 하는 학교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역 학생들, 도내 학생들의 비율을 어느 정도 수준에서 선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세종예술고의 경우 신입생의 50%를 세종시 관내 중학교 졸업생을 선발한다는 방침을 정해두고 있다. 

신입생 충원을 위한 전국단위 학생 모집이 자칫 지역 학생들의 예술 교육기회를 박탈하고, 시민의 세금으로 타 시군이나 타 시도출신 학생들을 지원하는 결과로 연결돼서는 안된다.

지방 예술고 신입생 중에는 초중학교때부터 예술교육을 받은 학생들도 있지만, 고등학교 입학해서 본격적으로 예술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절반 정도는 된다고 한다.

예술에 특별한 재능이 있는 학생들만 입학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계 고등학교나 특성화고등학교를 갈 실력이 안되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차선책으로 “그림이나 그리게 할까?”, “음악이나 시켜볼까?” 하는 심리로 자녀들을 예술고로 보내기도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신축으로 설립방식이 바뀌면서 광양의 공립예술고 개교는 당초 2018년에서 2019년으로 1년이 늦춰졌다. 

그리고, 아직 행정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학교신축은 착공되지 못하고 있다. 

예술고 설립이 확정된 이상 더 이상의 시행착오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학교운영방식, 학교에 설치할 전공학과, 신입생 선발 기준 등을 명확히 해 전공학과에 걸맞는 학교시설이 설계단계에서부터 반영되도록 하고, 예술교육을 희망하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예측가능한 설립 프로그램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황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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