繂曳(율예)[2] ]
/ 매천 황현

당사자 결판 짓듯 승부를 논하겠네
큰 산이 무너지듯 웃음소리 터지면
줄 깃발 늘어뜨린 채 끌고 가는 패잔병.
當下若將決生死 傍觀未暇論輸贏
당하약장결생사 방관미가론수영
忽如崩山笑不休 轍亂旗靡曳殘兵
홀여붕산소불휴 철란기미예잔병
 
당사자는 생사결판 구경꾼들 승부 몰라, 
웃음소리 터지면은 패잔병을 끌고 가네
 
준비가 끝나면 줄다리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고사를 드린다. 암줄과 수줄이 연결된 부분 앞에서 축문을 읽으며 사고 없이 행사가 진행되도록 기원한다.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가 울리면 양편은 서로 힘껏 줄을 잡아당긴다. 줄다리기는 전체의 힘이 한데 모아져야 하기 때문에, ‘편장’이라 불리는 지휘자가 호흡을 맞춰 기를 휘두르며 지휘한다. 승부는 중앙선에서 줄이 어느 쪽으로 많이 이동되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시인은 당사자는 마치 생사를 결판 짓 듯하니, 구경꾼들 미처 승부를 논할 겨를 없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줄과 깃발 늘어뜨린 채 패잔병을 끌고 가네(繂曳2)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당사자들은 마치 생사를 결판을 짓기나 하듯 / 구경꾼들은 미처 승부를 논할 겨를 없네 // 홀연히 산이 무너지듯이 웃음소리가 터지면 / 줄과 깃발을 늘어뜨린 채 패잔병을 끌고 가네]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당사자는 생사결판 구경꾼들 승부 몰라, 웃음소리 터지면은 패잔병을 끌고 가네’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줄다리기2]로 번역된다. 이 줄다리기 놀이에 쓰이는 줄은 거의 전부가 짚으로 만든다. 놀이가 있기 한 달쯤 전부터 마을 집집에서 짚을 거두어 준비한 것이 일반적인 통례다. 줄은 경험이 많은 노인들의 자문을 얻어 장정들이 도맡아 만드는 것이 풍습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만든 줄을 높은 가지에 걸어놓고 세 개를 합쳐 굵고 튼튼하게 만든다. 이런 과정을 반복함에 따라 보다 굵고 단단하며 무거운 줄을 만든다. 줄의 크기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개 지름이 0.5~1.4m가 되어 만들었고 길이는 40~60m가 되게 했다.
시인은 이제 경기를 시작하면서 승부를 가리는 어떤 장면의 연상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고 있다. 서로의 당사자는 마치 생사를 결판 짓기나 하는 듯이 구경꾼들은 미처 승부를 논할 겨를 없다는 선경의 시상을 이끌어 내고 있다. 양 편이 줄을 당기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우성을 치면서 구경을 하는 자의 열렬한 응원은 큰 소리로 이어진다.
화자는 이런 점을 생각하면서 줄다리기의 승부에 관한 처리에 따라 이긴 편에서는 소리를 치고 진 편에서는 신짝을 들고 땅을 치는 모습을 연상하는 시상이다. 홀연히 산이 무너지듯이 웃음소리가 터지게 되면, 줄과 깃발을 늘어뜨린 채 패잔병을 끌고 간다는 후정을 담았다. 웃음바다가 되면서 2차전이 진행되기도 한다.
 
【한자와 어구】
當下: 당사자. 若將: ~하는 것 같다. 決生死: 생사를 결단하다. 傍觀: 구경꾼. 未暇: 겨를이 없다. 論輸贏: 승부를 논하다. // 忽如崩山: 홀연히 산 무너지는 것 같다. 笑不休: 웃음소리 쉬지 않다. 轍亂旗靡: 줄과 깃발이 늘어지다. 曳殘兵: 패잔병 끌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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