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繂曳(율예)[3] ]
/ 매천 황현

밤 깊어 땀에 젖은 옷 한 벌 서늘한데
휘장 안 거센 바람 휘몰아 치는구나
승부에 상관하지 않고 큰 잔 가득 돌리네.
汗袍凄凜夜向闌 抹帕飄拂風怒鳴
한포처름야향란 말파표불풍노명
村篘麤瀉薄薄醪 無揀勝負輪深觥
촌추추사박박료 무간승부륜심굉
 
밤이 깊어 서늘하니 휘장 안은 거센 바람, 
묽은 탁주 쏟아내니 큰 잔 가득 돌린다네
 
경기가 끝나면 줄은 이긴 쪽이 갖거나 마을 공동의 것이 되기도 한다. 마을 입구의 액막이돌이나 나무에 감아 두거나 썰어서 논에 거름으로 넣기도 한다. 이와 같이 줄다리기는 대개 마을 단위로, 크게는 군 단위로 하는 단체 경기의 하나다. 줄다리기는 줄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놀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완전한 협동심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 놀이를 통하여 마을 사람들은 향토애와 동질감을 기른다. 시인은 밤이 깊어 가니 땀에 젖은 옷은 서늘한데, 휘장 안에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승부에는 상관없이 큰 잔을 가득 돌린다네(繂曳3)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밤이 깊어 가니 땀에 젖은 옷은 서늘한데 / 휘장 안에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네 // 시골 용수에서는 거칠게 묽은 탁주를 쏟아 내니 / 승부에는 상관없이 큰 잔을 가득 돌린다네]라고 번역된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밤이 깊어 서늘하니 휘장 안은 거센 바람, 묽은 탁주 쏟아내니 큰 잔 가득 돌린다네’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줄다리기3]로 번역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5세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처음으로 이 놀이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중국에서의 기록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도 훨씬 이전부터 하였으리라 짐작된다. 이 줄다리기 놀이는 주로 중부 이남지역에서 많이 하였는데,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충주지방, [동국세시기]에는 충청도·경기도·제주도 등지의 줄다리기 풍속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유명한 줄다리기는 충청남도 당진군의 기지시줄다리기, 강원도 삼척의 기줄다리기, 경상남도 영산의 줄다리기 등이 있다고 한다.
시인은 줄다리기가 끝나고 나서 한 숨을 쉬면서 땀에 젖은 옷을 말리는 일을 비롯해서 시원한 바람이 부는 모습까지 자세한 당시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점점 밤이 깊어 가니 땀에 젖은 옷은 서늘해져서 휘장 안에는 거센 바람이 휘몰아친다는 선경의 모습을 보였다. 해가 넘어가는 무렵까지 경기가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해질 무렵까지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화자는 서로 막걸리를 가득 따라 돌리는 과정에서 대화도 나누고, 정을 도탑게 했음을 시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시골 용수에서는 거칠게 묽은 탁주를 쏟아 낸다고 했으니 승부에는 상관없이 큰 잔을 가득 부어 돌린다고 했다. 흔히 시골의 풍부한 막걸리의 인심임을 알게 한다.
 
【한자와 어구】
汗袍: 땀에 젖은 옷. 凄凜: 서늘하다. 夜向闌: 밤이 깊어가다. 抹帕: 휘장 안. 飄拂: 나부끼어 떨치다. 風怒鳴: 바람이 성내에 불다. // 村篘: 시골 용수. 麤瀉: 거칠게 쏟다. 薄薄醪: 묽은 탁주. 無揀勝負: 승부에는 상관없다. 輪深觥: 큰 잔 가득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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