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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만신문 창간 15주년 특별 제안 - 지역 출신 독립운동가를 기억하자백운산 의병장 황병학선생 선양사업 필요
황망기 기자  |  mki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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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26  09:4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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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양읍 유림회관 앞에 소재한 ‘의사황병학기념비’. 이 비석은 지난 1986년 광양의 유림들이 선생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했다.
구한말 백운산 근거지로 항일 무력투쟁 전개… 단일 의병부대에서 5명 건국훈장 수훈
 
의병들의 무기제작장소 복원가치 높아
 
“나라의 원수를 갚지 못하고 화가 머리끝에까지 이르렀으니 이처럼 얼굴에 상처를 입고 살 바에야 차라리 원수를 갚고 죽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113년전인 1905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광양시 진상면 비촌리에 살고 있던 선비 황병학은 이 같은 격문을 지어 전라도와 경상도에 뿌렸다. 황병학 의사의 이러한 격문에 따라 인근의 산포수 250여명이 황병학 의진에 합류했다. 백운산의병의 시작이다. 그리고, 110년 전인 1908년 음력 7월 26일, 황병학의사를 비롯한 의병들은 ‘호남창의대장기’를 내걸고 일제에 맞서 무력투쟁을 선포한다.
 
백운산 의병, 무력투쟁 선포
 
본격적으로 무장투쟁을 선포한 황병학 의병부대의 첫 전투는 진월면 망덕포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 대한 기습공격이다. 당시, 망덕포구는 일본인들의 수탈 전진기지였다. 망덕포구로 이주해 온 일본인들은 근대적인 어선과 어구로 어장을 싹쓸이해갔다. 황병학 의병부대는 1908년 음력 8월 5일(양력 9월 1일) 새벽 3시, 150명의 의병들이 망덕포구를 기습해 6척의 일본인 선박과 여섯 채의 일본인주택을 불태우고 일본인 10명을 사살하고, 일본인이 소유하고 있던 10정의 양총을 노획했다. 
황병학 의병부대의 두번 째 전투는 1908년 음 9월 초 옥곡원 후산 전투였다. 이동 중인 일본군과 옥곡원 후산에서 맛 붙은 치열한 전투에서 상당수 의병이 희생되었고 황병학의사도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고 진상면 섬거리에 소재한 최춘명의 집에서 치료를 받다가 억불봉 용신암에 소재한 본부기지로 귀환해 치료를 받아 완쾌했다. 
황병학 의병부대의 제3차 전투는 1909년 음 1월 광양헌병분견소 기습작전이었다. 망덕포구 전투에서 입은 일본인의 피해를 보복하려고 광양읍에 새로 설치된 광양헌병분견소를 야간에 기습 공격하는 작전이었다. 황병학 의병부대는 이 전투를 성공리에 끝내고 10정의 양총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묘도 해상전투로 의병부대 해산
 
제4차 전투는 1909년 음 7월 19일 묘도해상전이었다. 일본군은 경찰병력과 군병력을 증강하여 의병부대의 본부인 백운산을 강력히 압박해왔다. 더 이상 백운산에서의 전투 활동이 어려워지자 의병부대는 본진을 광양만의 묘도로 옮기기로 한다. 250여명의 의병 중 그 동안의 전투에서 많은 의병이 희생되고 남아있는 의병부대원은 100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황병학 의병부대의 이동 계획은 사전에 일본군에게 누설됐다. 의병들은 묘도로 이동하던 중 일본군과 해상에서 전투를 벌여야 했다. 이 전투에서 황병학 의병부대는 절반 이상이 희생되고, 50여명의 의병들은 잠영으로 당시 여천군 삼일면으로 탈출하여 겨우 목숨을 건졌다. 묘도 해상전투로 황병학 의병부대는 궤멸적인 타격을 받게 된 것이다.
특히, 영호남지방에서 의병활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자 1909년 9월부터 일본군이 ‘남한대토벌작전’을 전개함에 따라 더 이상 의병활동은 어렵게 되어 살아남은 얼마 되지 않는 의병도 해산하기에 이르렀다. 
황병학 의사는 이후 1918년 고흥출신인 기산도와 함께 ‘임시정부국민대회 전라도의무금모집단’을 조직하고 상해 임시정부 활동자금을 수집하여 임시정부로 보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군자금 모집하려다 피체돼 옥고
 
그러나, 이 조직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모집단기밀을 포착해 조직이 와해된다. 황병학의사는 1919년 기미삼일독립운동을 계기로 만주로 망명하여 용정, 영고탑, 흥개빈, 흑룡강 등지에서 독립군부대에 가담하여 독립활동을 전개하다가 1923년 상해임시정부의 비밀지령을 받고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해서 국내에 잠입도중 의주에서 일본헌병에 체포된다. 이후, 평양형무소에서 4년의 감옥살이를 하고 1927년 출옥하여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1931년 4월 23일 영면한다. 
정부는 황병학의사의 공적을 인정해 1968년 3월 1일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고, 1977년 10월 26일에는 의사의 묘소를 진상면 비촌에서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으로 이장했다. 
1986년 9월 13일, 광양향교와 광양유림들은 광양향교부지에 “의사황병학기념비”를 건립했고 1998년 4월에는 국가보훈처, 광복회, 독립기념관 공동으로 황병학의사를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여 홍보물을 발간하고 독립기념관에 황의사의 공적을 전시하여 국민에게 널리 알렸다.
 
후손이 광양시에 현창사업 건의
 
백척간두에 선 조국을 구하기 위해 나선 의병들의 희생은 오늘 날 대한민국 건국의 초석이 되었다. 그렇지만, 의사의 고향인 광양에서 황병학 의병장에 대한 기념사업이나 현창사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의사의 후손인 황호부 전 감사원 국장이 최근 광양시에 황병학 의병장에 대한 현창사업을 건의하고 나섰다.
황호부 전 국장은 “황병학의병부대원의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 황병학의병부대 공적선양사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며, ‘황병학의병부대 공적선양사업 추진위원회’ 설치를 건의했다.
황 전 국장은 구체적으로 황병학의병부대의 제1차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망덕만전투의 현장인 망덕포구에 의병전투 공적선양홍보관을 설치해 망덕포구가 황병학의병부대의  전투대승 전적지임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황 전 국장은 “구한말 의병부대에 건국훈장이 수여된 실태를 분석해보면 창설된 의병부대 모두에게 건국훈장이 수여된 것이 아니고, 건국훈장이 수여된 의병부대는 소수에 불과하며 수여되었다 하더라고 대개는 하나의 의병부대에서 한두 명이 건국훈장이 수여되고 있는 실정인데, 황병학의병부대에서는 그 부대원 중 다섯 분에게 건국훈장이 수여되었다”고 밝혔다.
황병학 의병부대의 의병장 황병학(광양인)과 선봉장 김응백(광양인) 선생에게 독립장이 수여되었으며, 선봉장 황순모(광양인), 선봉장 백학선(광양인), 선봉장 한규순(구례인) 선생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하나의 의병부대에서 다섯 분이나 훈장이 수여된 예는 다른 의병부대에서는 찾기 힘들다.
황호부 전 국장은 이와함께 황병학 의병부대의 유적지인 생쇠골야철지복원을 건의했다.
 
의병활동 유적지 복원해야
 
생쇠골야철지는 황병학의병부대가 백운산에서 의병전투에 사용하기 위해 칼과 창을 제작했던 곳으로 생쇠골과 내회계곡, 노점골 등 3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야철지는 한 때 광양시가 독립운동 유적으로 복원을 추진하기도 했으나 현재도 그 잔재가 뚜렷하게 많이 남아있다.
특히 전국의병들의 전적지 중 의병들이 전투할 때 사용할 무기를 제작했던 야철지가 복원된 곳은 전국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곳을 복원한다면 역사관광자원으로의 활용도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한편, 지난 해 9월, 광양향교는 제4회 전국한시백일장의 시제로 ‘의사 황병학 선생 추모’를 선정했는데 당시 장원을 차지한 문경사람 한정석 유림은 이렇게 노래했다.
風前燈火我東危 (풍전등화아동위 / 바람 앞에 등불같이 나라가 위태로울 때) 
義士衷心倡義宜 (의사충심창의의 / 의사의 충심에 마땅히 의병을 일으키셨네)
非顧負傷殲敵際 (비원부상섬적제 / 부상을 돌보지 않고 끝까지 적을 물리쳤고)
無關生死保民時 (무관생사보민시 / 생과 사를 무관하고 백성을 보호하신 때였네)
斥倭鬪志揮長劍 (척왜투지휘장검 / 왜적을 물리치려는 투지로 장검을 휘두르고,) 
愛族忠貞掛將旗 (애족충정괘장기 / 겨레를 사랑하는 충정으로 대장기를 걸었네)
偉績芳名垂竹帛 (위적방명수죽백 / 위대한 업적과 꽃다운 이름 역사에 드리우고)
萬人追慕永年維 (만인추모영년유 / 모든 사람이 추모하며 오직 영원히 생각하네)
 
황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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