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필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 / 문학평론가 / 문학박사
閔輔國永煥(민보국영환)[6]
/ 매천 황현

마르고 깨끗하게 찾으련 죽을 자리
땅 굽어 보았던가 하늘도 올려보고
통쾌히 결단을 내려 저승길을 택했네.
欲覔乾凈土   俯仰天地廓
욕멱건정토   부앙천지곽
快哉決須臾   一笑付冥漠
쾌재결수유   일소부명막
 
죽을 자리 찾으려고 하늘 보고 땅을 굽어, 
통쾌하게 결단 내려서 웃음 웃고 저승길로
 
민영환의 각종 직책은 갑신정변 이후 민영익이 정권에서 밀려난 후 그가 가진 직함을 물려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도 민겸호의 아들이란 이유로 처단 대상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민중들에게 미움을 받던 여흥민의 척족 대표 격인 인물이었기 때문인지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봉준 체포 후 진술기록을 보면 고영근, 민영준과 함께 민영환을 탐관오리 대표로 지목했음도 주목된다. 시인은 마르고 깨끗하도록 죽을 자리 찾으려고 했고, 하늘 올려도 보고 땅을 굽어도 보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한바탕 웃음을 웃고 저승길을 택했구나(閔輔國永煥6)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배율이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마르고 깨끗하도록 죽을 자리 찾으려 했고 / 하늘을 올려도 보고 땅을 굽어도 보았네 // 통쾌하도다, 순식간에 저렇게 결단을 내려서 / 한바탕 웃음 웃고 저승길 택했구나]라는 시상이다. 아래 감상적 평설에서 다음과 같은 시인의 시상을 유추해 본다. ‘죽을 자리 찾으려고 하늘 보고 땅을 굽어, 통쾌하게 결단 내려서 웃음 웃고 저승길로’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민영환의 자결을 슬퍼하며6]로 번역된다. 민영환은 독립협회를 후원하여 '독립ㆍ자강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민권 신장과 의회 설치 등 정치개혁 여론을 선도하려고 노력했다. 군부대신 겸 내무대신의 자리에 있으면서 개혁파를 옹호하고 중추원(中樞院)을 의회로 개편하려고 시도했으나, 당시의 어용단체인 황국협회(皇國協會)로부터 ‘독립당을 옹호하여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정을 수립하려 한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기도 했던 수난을 겪었다. 이로 인해 요즈음 민주주의 지향 의회제도 도입은 좌절되었다.
시인은 이와 같은 개혁이 단행되지 못하는 것은 정치적인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물론 주위 동지를 하나 둘씩 잃어버린 외로운 정객으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현실적인 상활에서 마르고 깨끗하도록 죽을 자리 찾으려고 했을 것이고, 하늘 올려도 보고 땅을 굽어도 보았을 것은 뻔해 보인다. 이러한 입지적인 상활에서 이제 충정공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딱 한 가지였음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시적 대상자인 민영환의 선택한 길을 두고 ‘통쾌하도다!’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그리고 순식간에 저렇게 결단을 내려서 자결을 했으니 한바탕 웃음을 웃고 저승길을 택하고 그만 말았다는 시상을 이끌어 냈다. 선경에 의한 두터운 후정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보인다.
 
【한자와 어구】
欲覔: 찾고자 하다. 乾凈土: 마르고 깨끗한 흙. 俯仰: 구부리고 우러르다. 天地廓: 천지의 둘레 혹은 성곽. // 快哉: 통쾌하다. 決須臾: 잠깐 사이에 결단을 내리다.  一笑: 한 번 웃다. 付冥漠: 저승길을 택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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