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 (시조시인 / 문학평론가문학박사 / 필명 장 강(張江)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蘭雪軒-讀國朝諸家詩[난설헌-독국조제가시](10)
 
                                      매천 황현
초당의 집안에는 세 그루 보수 있어
제일간 선재 경번 어지러운 티끌세상
부용이 처량하게도 월상 흔적 띠었네.
三株寶樹草堂門   第一仙才屬景樊
삼주보수초당문   제일선재속경번
料得塵寰難久住   芙蓉凄帶月霜痕
료득진환난구주   부용처대월상흔
 
(詩題)로 선택한 시적상관자인 난설헌(蘭雪軒)은 허초희(許楚姬:1563~1589)의 호다. 실명 보다는 아호로 알려진다. 열 살이 넘어 이달에게 시를 배운 뒤 그녀의 재질은 장안에 소문이 났다. 아름다운 용모와 재치, 뛰어난 시재는 그런 명성을 얻기에 충분했다. 
‘삼한(三恨)’, 곧 ‘세 가지 한탄’을 노래했단다. 첫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요,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요, 셋째는 남편과 금슬이 좋지 못한 것이라 한다. 시인 초당의 집안에 세 그루 보수 중에서, 제일가는 선재는 경번이었다고 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티끌 세상 오래 머무르지 못함을 알았음인가(蘭雪軒 許楚姬[10]:1563~1589)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초당의 집안에 세 그루 보수 중에서 / 제일가는 선재는 경번이었다 하네 // 티끌 세상 오래 머무르지 못함을 알았음인가 / 부용이 처량하게 월상 흔적 띠었네]라는 시상이다. 이어진 오른쪽 평설에서 시상의 범상함을 아래와 같이 정리한다. ‘초당 집에 세 그루 보수 제일 가는 선재 경번, 티끌 세상 오래 못남아 부용 처량 월상 흔적’ 이라는 화자의 상상력이다.
위 시제는 [난설헌 허초희의 시를 읽고]로 의역해 본다. 시어로 쓰인 ‘초당(草堂)’은 허균, 허난설헌의 아버지인 허엽(許曄, 1517~1580)의 호다. 진사시를 거쳐 사가독서한 후에 대사성을 역임하였다.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보수(寶樹)’는 보배로운 나무라는 뜻으로, 남의 자제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경번(景樊)’은 여류 시인 허난설헌의 자다. 불행한 시집 생활과 친정의 옥사 등으로 인해 불우한 삶을 살다가 27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월상(月霜) 흔적’은 달빛 아래 내린 서리의 흔적을 뜻한 시어다.
 
 
초당 집에 세 그루 보수 제일 가는 선재 경번, 
티끌 세상 오래 못남아 부용 처량 월상 흔적
 
 
시인은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할 만큼 비통한 심정으로 살았을 것을 잘 알고 있어 보인다. 초당의 집안에 세 그루 보수 중에서 조선에서 제일가는 선재는 경번인 난설헌이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난설헌의 이름은 장안에 파다했음을 지적한 촌철살인과 같은 한 마디다.
화자는 그래서 티끌 세상을 더 이상은 오래 머무르지 못함을 알았음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은 다음 부용인 난설헌이 처량하게 월상 흔적 띠었다는 애석함을 보인다. 난설헌은 첫째는 바로 그녀가 시재를 뽐낼 수 없는 좁은 풍토를 안타까워했을 것이고, 둘째는 남성으로 태어나 마음껏 삶을 노래하지 못한 것을 뜻하겠다. 셋째는 그녀의 남편이 나이가 들어가는데도 더욱 방탕의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음을 뜻한다고 보아야겠다.
 
【한자와 어구】
三株寶樹: 세 그루 나무. 草堂門: 초당의 문. 第一仙才: 제일가는 수재. 屬景樊: 경번이었다. // 料得: 미리 알다. 헤아리다. 塵寰: 티끌 세상. 難久住: 오래 머물지 못하다. 芙蓉: 부용. 凄帶: 처량하다. 月霜痕: 월상 흔적을 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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