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秋野登稔(추야등임)                     
   叙光 張喜久

    가을신 근역에서 형통함 다스리고
    오곡은 이이하게 들판을 함께 하네
    촌부들 격양가 부르니 상서로움 익어가고.
    蓐收槿域治亨通   五穀離離四野同
    욕수근역치형통   오곡리리사야동
    金波滿頃佳期到   村夫擊壤樂無窮
    금파만경가기도   촌부격양락무궁

근역 형통 가을신이 사방 들판 오곡 익어, 
상서로운 기운 익어 격양가로 즐거우리

 

우리 농촌 인심을 풍성하다. 강아지를 앞 새우고 들밥을 머리에 이고 논밭으로 나가는 아낙의 모습들은 보릿고개를 넘기면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진풍경이었다. ‘어이, 이 사람아 술 한 잔하고 가시게’하면서 행인을 부르던 일이 엊그제인데, 지금의 진풍경은 전연 다르다. 튀김에 자장면과 맥주를 시켜 새참을 드는 모습 속에서 지나가는 객(客)을 부르는 인심은 사라지고 없다. 변화된 풍속도다. 시인은 구슬이슬 곡식 익어 상서로운 기운 충만하고, 촌부들 격양가 부르니 즐거움이 무궁하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가을신 우리 땅 근역에 이르러 형통함을 다스리고(秋野登稔)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가을신 근역에 이르러 형통함 다스리고 /오곡을 이이하게 사방 들판 함께 익어가네 // 구슬이슬 곡식들이 익어 상서로운 기운 충만하고 / 촌부들 격양가 부르니 즐거움이 무궁하네]라는 시상이다. 서문격 여덟 줄 초입문장은 이 글의 요점이자 가이던스가 된다. ‘근역 형통 가을신이 사방 들판 오곡 익어, 상서로운 기운 익어 격양가로 즐거우리’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가을 들판엔 곡식이 무르 익어가니]로 의역된다. 한강의 가을 달을 감상하면서 풍성함에 만족했던 시인은 가을의 정취에 만끽하려고 농촌들녘을 거닐었음을 보인다. 풍성한 가을이다. 살랑 불던 바람과 따스한 햇볕을 받아 오곡에 무르익어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농부들의 이마에서 뽀송뽀송한 땀기운을 느끼게 하는 ‘얼쑤얼’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 살가운 기분을 만끽한다. 농부들이 트럭터 소리를 내며 거두어 드릴 벼수확에 여념이 없었음을 보인다.
노룻노룻 가을이 무르 익어가는 마을 들판이 어서 오라는 듯이 손짓을 한다. 얼마있지 않으면 손짓은커녕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사래를 치면서 떠나는 만추를 생각하면 풍성한 가을을 껴안아야 하겠다. 시인은 여기까지 생각하면서 가을신(蓐收)이 근역에 이르러 형통함을 다스리면서, 오곡을 이이하게 하여 사방 들판 함께 익어가고 있다고 했다. 우리네 농촌의 익어가는 가을 풍경은 마냥 그랬다.
시인의 입을 빌은 화자의 후정은 가을 정취에 취한 나머지 격양가를 부를 태세까지 맛보게 한다. 가을에 내라는 구슬이슬이 곡식을 누렇게 익어가게 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하여 촌부들은 격양가 부르니 즐거움이 무궁하다고 했다. 저 멀리서 만종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리는 듯하다.

【한자와 어구】
蓐收: 가을신. 槿域: 근역. 한 반도. 治亨通: 형통을 다스리다. 五穀: 오곡. 離離: 이이하게 하다. 오곡이 익다. 四野同: 모든 들이 같다. // 金波: 금물결. 滿頃: 모든 이랑. 佳期到: 좋은 시기가 돌아오다. 村夫: 농부들. 擊壤: 격양가. 樂無窮: 즐거움이 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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