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인생을 살면서 악기하나쯤을 다룰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어떠한 것보다 그 재미가 크다고 한다. 악기를 통해 자신의 기쁨을 찾을 수도 있지만 그 소리를 여러 사람들에게 전달해 기쁨을 배가 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박대석 광양시 생활음악협회 지부장은 색소폰으로 이미 여러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있다. 광양시는 물론 전국에서도 그의 인기는 이미 유명한데, 많은 색소폰 동호회원들이 그의 색소폰 연주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색소폰은 인생
“저는 원래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다만 어려서부터 간직해 오던 꿈이 있어 색소폰을 다시 잡게 됐어요.”
박대석 회장은 광양시 생활음악협회 지부장이면서 현재 광양 항만관련업을 하고 있는 회사 대표이다. 
회사의 식구들은 박대석 회장이 색소폰을 연주하는 능력자라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한다.
“중학교 때 색소폰을 처음 잡아 봤는데 그 소리가 너무 좋아 색소폰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중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만져본 색소폰은 하루하루를 신나게 했고, 고등학교 다닐 때는 음대를 들어가기 위해 개인레슨도 받으며 노력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어머니는 지원을 해주는 반면 아버지의 반대로 인해 그는 음대를 포기하고 경영학을 전공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이지만 경영학을 전공한 이력으로 광양시와 인연을 맺어 33년간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색소폰를 다시 한번 불어보고 싶은 마음에 라이브 카페를 찾아 색소폰 연주를 했다. 그것도 몇 번이 반복되자 많은 사람들이 색소폰을 가르쳐줄 수 없냐며 문의를 했다고 한다. 그게 20년 전의 일이다.
그러면서 그는 광양에서 최초의 색소폰 학원을 개원하게 된다. 
그에게 배운 제자는 지금까지 500여명에 이른다.

■음악으로 봉사하다
학원을 하면서 많은 제자를 배출했지만 그는 더 연주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대구대학교 관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광양에서 회사를 다니면서 그 먼 대구까지 오가는 것은 쉽지 않아 중도에 학교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는 비록 포기했지만 색소폰에 대한 저의 열정은 아직도 식지 않았습니다.”
그는 많은 제자들과 함께 색소폰을 사랑하는 동호회를 만들었다. 
현재 이 동호회는 노인복지관, 요양원 등을 다니며 음악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또 광양의 매화축제와 숯불구이축제, 전어축제를 비롯해 인근 지역의 산수화축제, 하동벚꽃축제 등에서 초청 받아 연주를 하고 있다. 이때 들어온 수입금 전부 유니세프에 후원하고 있다.
박 회장은 이제는 정년을 생각할 나이가 되면서 나머지 인생을 음악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한다.
“최종적인 목표는 아니지만 이제 정년퇴직을 하고나면 음악을 하면서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광양시와 인근도시에서만 활동을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이후에는 전국적인 생활이 될거에요.”
박 회장은 지난해 성남시에서 개인 색소폰 콘서트를 연 바 있다고 한다. 그때 100명 이상이 참여했으며 대만의 리엔쳉(대만의 인간문화제 악기사) 악기 관계자도 5명이 참여해 그의 연주를 들었다고 한다.
그는 “색소폰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친근감 있는 악기가 되길 바란다”며 “유튜브에도 저의 이름을 치면 다양한 연주영사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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