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주의는 원래 지역의 특수성을 살리고 지역 내의 자주성과 자치성을 추구하는 순기능(順機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역 간의 갈등과 반목 등의 역기능(逆機能)으로, 지역갈등을 넘어 적대적 지역감정으로까지 변모(變貌)하였다. 
세계는 지금 중국과 미국이 첨예하게 대결을 하고 있다. 두 나라의 대립은 자기 나라들에만 국한(局限)되는 게 아니라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수천 년 전에도 거의 동시대(同時代)에 공자(BC551~479), 맹자(BC372~289), 노자를 주축으로 한 동양철학과 소크라테스(BC470~399), 플라톤(BC427~347), 아리스토텔레스(BC384~322) 등이 중심이 된 서양철학이 결과론적으로 동서양을 대표하였다. 넓은 의미의 지역주의이다.
지역주의는 피라미드처럼 퍼져서 내려간다. 우선 한반도를 살펴보자. 같은 민족이 남북으로 갈라져 서로에게 총구(銃口)를 겨누고 있다. 비록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패망에 따른 세계열강들의 패권 다툼으로 분단되었다고 하지만, 해방 후 과도기의 진영(陣營) 간 분열(分裂)이 더 큰 원인이었다. 오직 반공(反共)이데올로기로 친일파를 청산하기는커녕, 그들을 중용(重用)해서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한 이승만의 정권 야욕(野慾)이 분단을 고착화 했다. 지금도 처벌받고 있는 유럽의 나찌 부역자(附逆者)들과는 달리, 남한의 친일파와 그 후손들은 적산(敵産)을 기반으로 한 부(富)와 권력(權力)을 누리며 보란 듯이 땅땅거리며 살고 있다. 요즘은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의 국립현충원 안장(安葬) 논란으로도 시끄럽다. 한국전쟁에서 아무리 많은 공을 세웠다 하더라도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인데,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봉천 군관학교를 자원입대해서 독립군 토벌작전에 앞장선 반민족행위자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다니, 지하에서 독립 운동가들이 통곡할 노릇이다. 가슴이 저미어 온다. 만약 친일파 척결이 됐으면 그가 과연 백수(白壽)를 누렸을까? 
그 아래로 내려가 본다. 남한은 어떠한가. 영호남의 지역주의는 이미 지역감정의 대명사가 되었다. 과거 독재정권 시절, 정치형태는 여촌야도(與村野都)였다. 여당은 시골이 야당은 도시에서 우세했다는 이야기이다. 소득과 교육수준이 비교적 높고 인구가 많은 도시민이 독재정권을 강하게 부정(不正)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민심을 간파한 박정희 정권은 김대중과 맞붙은 1971년 7대 대통령 선거에서 지역감정을 일으켜 정권을 연장한다. 그리고 1년 뒤 유신헌법(維新憲法)을 선포하고, 종신 집권을 획책(劃策)하다 결국은 부하의 총탄에 최후를 맞이한다. 이후로도 많은 정치인들이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면서 권력에 맛 들어 지역을 분열시켰다. 때마침 전두환 군사정권이 민심을 정치외적(政治外的)으로 돌리려고 출범시킨 프로 야구도 한몫을 단단히 했다. 북한도 ‘평양’ 중심의 평안도와 ‘함흥’ 중심의 함경도가 서로 사돈도 맺지 않을 정도로 지역감정이 심하다고 한다. 좋지 않은 걸 남.북이 닮았으니 안타깝다.
또 한 단계 밑으로 내려가 보자. 전라남도는 괜찮은가. 동부 6군,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여수, 순천, 광양, 고흥, 보성, 구례를 일컫는 말로 동부전남의 별칭(別稱)이다. 수년 전 모 체육단체회장 선거 때의 일이다. 오랫동안 회장직을 유지해 온 서부전남 측이 여수 국가공단, 광양제철소 등 산업체가 많아서 스폰서(sponsor) 확보가 유리한 동부 전남 측에 양보할 의사를 비쳤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그래도 우리 동네’를 외친 서부전남 측의 승리였다. 열악한 협회의 피해는 고스란히 주니어 선수들의 몫으로 돌아갔다. 최근 모 정당의 도당위원장 자리를 놓고도 동서 대결을 벌이는 모양새다.
그렇다면 광양은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 역시나 동서 대결이다. 광양읍 중심의 서부와 구(舊)동광양시 중심의 동부가 서로 다투면서 여러 가지 시설들을 나누어 갖다보니 시(市)의 구심점이 없다. 중심이 없는 도시의 발전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인구 15만을 뛰어 넘기가 그토록 요원(遙遠)한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풀뿌리 기초단체인 읍, 면, 동, 그중에서도 면 지역을 한번 보자.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보통 물(水) 위, 물 아래 등으로 갈리어 크고 작은 사업(事業)들에서 무조건 우리 동네, 우리 동네에 유리한 곳을 외친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무조건 우리 동네 사랑’은 흉물스럽게 방치된 우리 주변의 시설들이 대신 말을 해 준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아닌, 뿌리 깊은 지역이기주의가 우리 동네를 멍들게 하고 시(市), 도(道), 결국은 나라의 근간(根幹)까지 흔든다.
바야흐로 지방소멸의 시대가 오고 있다. 갈등(葛藤)과 반목(反目)으로 발전이 더뎌지는 지역은 도태되기 마련이고 자연스럽게 인구감소로 이어진다. 이게 바로 지방소멸이다. 발전이냐, 소멸이냐는 주민들의 선택에 달렸다. 중요 정책들은 제삼자적(第三者的) 입장에서 결정하고, 양보와 소통의 미덕으로 화합해서, 우리 동네부터 지역주의를 타파하자. 나아가서 광양, 전남, 영호남의 동서(東西)갈등을 종식시킨다면, 마침내 우리의 소원인 남북통일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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