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룡계곡으로 올라가는 길목을 가다보면 하얀 건물의 예배당이 눈에 들어온다. 예배당 입구에 서 있는 표지석이 대방교회임을 알려주고 있는데, 사실 대방교회는 현재의 대방마을회관이 들어서 있는 마을 안쪽(용곡리 349번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한 대방교회가 어느덧 110년의 세월을 넘기고 지금의 자리에서 대방마을의 이정표 역할을 해 주고 있다.

■ 대방의 의미
대방마을은 대방교회를 지나 대방교(大方橋)를 건너면서부터 시작된다. 대방교를 건너기 전 대방마을의 보호수와 대방마을을 지칭하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대방마을은 본래 광양현 북면 옥룡리 지역으로 추정되며 1700년대 초기 이후에는 옥룡면에 속했으며 1789년경(호국총수)에는 옥룡면 대방촌(大芳村)이라 했다.
마을의 원래 이름은 ‘연화촌(蓮花村)’이었다고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도사가 뒷산을 달에, 마을을 꽃에 비유하여 ‘달뜬 아래 꽃다운 마을’이라는 의미로 ‘연화촌(蓮花村)’이라고 불렀다는 것.
하지만 국가 주요문헌에 처음 기록된 이름은 대방(大方)이다. 
대방(大方)의 의미는 ‘규모가 큰 마을’, ‘큰 인물이 나는 고을’ 등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중국 청나라에서 망명해온 풍수지리설과 도술에 능통한 양맥수(梁麥秀)가 추동마을과 이 고을에 거주하며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처리해줬는데 특별한 인물이 사는 고장이라 하여 대방(大方)이라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마을 출신 인물 중에는 고종19년 통정대부 부호군을 비롯해 해군장성, 향교 전교, 대학교 총장, 방송국 PD 등 특별한 인물들이 있다.

■ 보호수가 마을의 안식처
내방마을에는 당산나무와 정자나무가 각각 있다. 두 나무 모두 수령 400년 이상 된 것으로 현재 보호수로 지정돼 있으면서 마을사람들의 안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당산나무는 대방교 바로 앞(옥룡면 운평리 858)에서, 정자나무는 지금의 마을회관 자리(옥룡면 용곡리 276-1)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 근처 점터곳은 고려 때 옹기를 구웠던 곳이라 전해져 오고 있다. 지금도 가끔 토기와 파편이 출토되나 가마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특정지명으로는 너른바구(너른바구는 마을 뒤 500m쯤 거리에 있는 넓은 바구(바위)를 뜻한다), 쑤시밭골(제잣 동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수수밭이 있었다), 백톳거리(너른바구 위에 있는 바위로 벼락을 맞아다고 함), 똥산( 대방 북서쪽에 있는 산으로, 들 가운데 작게 솟아 있음) 등이 있다. 
용곡리의 이름유래는 1914년 왜정시대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옥동리, 석곡리, 초장리, 장암리, 홍룡리, 대방리가 병합되면서 생겨나게 된 것인데, 흥룡(興龍)과 석곡(石谷)의 이름을 따서 용곡리(龍谷里)라 했다. 즉 용곡리 대방마을은 용의 계곡에서 큰 인물이 나는 마을로 해석된다.

양재생 기자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