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곤(수필가)

강인 듯 바다인 듯 섬진강의 끝자락, 광양의 망덕포구에서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품은 ‘정병욱 가옥’ 앞이다. 이 집은 일제강점기말 대다수 지식인들이 친일파로 변절한 암울했던 시절, 기개를 꺾지 않은 대표적인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룻장을 뜯어서 시집(詩集)을 숨긴 정병욱 모친의 기지로, 하마터면 우리 역사에서 잊힐 뻔했던 위대한 시인의 숨결이 다시 살아난 곳이다.    
강을 잠시 바라본다. 70여 년 전 피비린내 나는 빨치산 토벌작전으로 붉게 물든 섬진강물이 다시 흐르는 것처럼 오늘따라 불그스레해 보인다. 1953년 휴전 직후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은 지리산 빗점골에서 토벌대에게 최후를 맞이한다. 학생 신분으로 6.10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그는 독립운동가이면서 철저한 공산주의자였다. 
강변을 따라서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현상의 피가 흐르고 윤동주의 혼이 숨 쉬는 이 길은 건너편 ‘하동포구 80리길’과 마주보며 나란히 달린다. 감히 ‘동주 현상 80리길’ 이라 부르고 싶다. 
극심한 이데올로기로 인해 나라가 두 토막 나고, 한 토막은 또다시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있는 세태를 곱씹으며 남해고속도로 아래를 지난다. 오른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섬진강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걸었다. 지난봄과 여름 온 강바닥에 널브러져 재첩을 잡던 아낙네들은 온데간데없고, 8월 대홍수로 모래만 잔뜩 쌓여 있다. 만추(晩秋)의 강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어느덧 경전선 아래까지 왔다. 1968년부터 50년 동안 단선으로 운행되다가 최근 복선으로 다시 개통하면서 폐(廢) 철교가 하나 생겼다. 그 위에 사람들이 전라도와 경상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산책을 즐긴다. 한번 올라가 봤다. 중간 중간에 유리바닥을 깔아서 강바닥이 훤히 보인다. 강물이 너무 맑아서 모래알도 셀 것만 같다. 상하이 동방명주가 부럽지 않다. 
길을 조금 재촉하니 중화요리집이 하나 나온다. 때는 이르지만 시장기를 때우러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아직 멀었는데도 손님들로 북적인다. 제 시간에 오면 줄을 서기 때문이란다. 맛, 가격, 양에서 경쟁자가 없다. 자장면 한 그릇이 삼천 원이고, 보통이 곱빼기 보다 많아서 미안할 지경이다. 식후경으로 강 건너를 바라본다. 천년기념물 하동 송림이 있다. 300여 년 된 소나무 천 여 그루가 물 위에 떠 있는 백사장과 어울려 동양화에서나 본 듯한 절경을 이룬다. 
경취에 취한 채 전라남도 제일 관문 섬진교 아래를 지난다. 백 여 미터 나아가자 강 언저리에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것으로 보이는 선창 하나가 있다. 세월의 무게에 못 이겨 흉물스럽다.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교통의 요지였고, 한국전쟁 때는 북한군이 위장 도하작전을 했던 곳이다. 당시 하동전투에서 ‘채병덕 장군’이 전사하는 등 한국군 대패에 원인을 제공했다. 역사적 교훈이 있는 곳인데 방치돼있어서 안타깝다. 이어져 오만 여 평의 섬진강 둔치가 펼쳐져 있다. 한 가운데 드론교육장이 있고 하늘에 몇 대가 가을하늘 고추잠자리처럼 떠다닌다. 바로 옆으로 잔잔히 흐르는 넓은 강물은 섬호(섬진강호수)라고 부르기에 충분하다.     
가로수길 하나가 나온다. 고즈넉한 카페 하나를 끼고 있는 마사(摩沙) 길이다. 불면증에 최고라면서 맨발로 걷는 이들이 꽤 많다. 나도 따라서 걸었다. 발바닥 전체를 마사지 해주니 잠이 오지않고는 못 배길 것 같다. 길 끝에는 섬진강의 상징인 두꺼비 한 마리가 기다린다. 집채 만 한 큰 바위로 복을 줄 것만 같아서 소원을 빌어본다. 
길모퉁이 돌아서니 매화 마을이다. 저편 산허리에 청매실농원이 흰 구름과 함께 살포시 모습을 드러낸다. 강가에는 임진왜란 때 두꺼비들의 공격으로 왜구들이 물러갔다는 전설의 두꺼비 바위가 있다. 바로 옆에 수월정(水月亭)이라는 정자(亭子)가 쉬었다 가라고 자리를 내 놓는다. 송강 정철은 ‘수월정기’를 써 이곳의 멋진 풍경과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한참을 걸었다. 이제부터는 박경리 소설 ‘토지’의 무대가 펼쳐진다. 강 건너편에 평사리공원, 황금들판 무딤이 들, 최참판댁이 파노라마로 이어진다. 서희와 길상이가 환생하는 것 같다. 어렴풋이 화개장터가 눈에 들어온다.
저녁노을에 강물이 붉게 물든다. 드디어 남도대교에 도착했다. 꼭 한번은 걸어 봐야 할 ‘동주 현상 80리 길’의 끝이다. 그리고 하동포구 80리 길을 만난다. 다리아래 백사장은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이 일제치하 항일운동 공로와 인품을 존중해 이현상의 장례를 정중하게 치러준 곳이다. 좌익과 우익의 인간적인 만남의 장(場)이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진보와 보수의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다. 기득권 싸움인지 이념 싸움인지 모르겠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소크라테스를 친근감 있게 부른 나훈아의 ‘테스형’이다.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테스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형,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먼저가본 저세상 어떤 가요 동주형, 가보니까 이념은 있던 가요 현상형, 아! 윤동주형, 이현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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