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희 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문학박사・필명 여명 장강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牧牛(목우) 
                                         叙光 張喜久

        몸 바쳐 사육하며 순하게 길렀지만
        야성이 살아날까 손 만져 다독이며
        강제로 잡지 않아도 사람을 잘 따르고.
        馴治飼養盡功身    野性恐生摩定塵
        순치사양진공신    야성공생마정진
        不待常時順順也    無拘鎖强自隧人
        불대상시순순야    무구쇄강자수인

‘사육하며 길들이니 야성이 되살아 날까 
손을 만져 진정시켜 강제로 사람 따르게’

 

십우도(十牛圖)는 수행자가 정진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선화(禪畵)로 그 과정을 10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다섯 번째인 [목우(牧牛)]는 거친 소를 자기의 뜻대로 잘 길들이는 모습으로 묘사한다. 소의 모습은 검은 색에서 흰색으로 변한다. 이것은 삼독(三毒)의 때를 지워가는 단계로서, 자신을 다스리고 마음을 유순하게 길들이는 그런 단계로 보았다. 몸을 바쳐 사육하며 순하게 길들이니, 야성 되살아날까 두려워 손으로 만져 진정시킨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구속 않고 강제로 잡지 않아도 사람을 따르네(牧牛)로 제목을 붙인 칠언절구다. 작자는 서광 장희구(張喜久:1945∼ )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몸을 다 바쳐서 사육하며 소를 순하게 길들이니 / 야성이 되살아날까 두려워 손 만져 진정시키네 // 항상 기다리지 않아도 순순히 잘 따르고 / 구속을 하지 않고 강제로 잡지 않아도 사람 따르네]라는 시상이다. 감상적 평설을 통해서 시인의 입장과 화자의 입장을 비교한다.  라는 화자의 상상력을 만난다.
위 시제는 [소를 길들이다]로 의역된다. 이 과정은 마음의 때를 본격적으로 제거해 가면서 자신을 정화시켜 나가는 상태 정도에 따라 소의 색깔이 흰색으로 바뀌게 된다. 유유히 소를 먹이는 모습으로 그려 나간다. 선(禪)사상에서는 목우의 단계를 대단히 중요시했다. 이는 곧, [참 나를 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라고 본다.
 시인은 유순하게 소를 사육하면서 길들이지만 행여 야성이 되살아날까 두려워한다. 몸을 다 바쳐 사육하면서 순하게 길들이지만 행여 야성이 되살아날까 두려워 손을 만지면서 진정시키기도 한다. 성격이 순하도록 사육에 열심하지만, 야성을 잠재우는 것이 진정한 목우의 도리라는 것을 안다.
 화자는 상당한 목우의 경지에 들어서서 자기를 잘 다스릴 줄 아는 모양새를 갖춘다. 항상 기다리지 않아도 소가 순순하게 잘 따르고, 구속하지 않고 강제로 잡지 않아도 사람을 따르는 경지에 놓이게 됨을 알게 된다. 완전한 목우의 경지에 도달되었음을 알게 한다.
 불가 선시禪詩 십우도에서는 [채찍과 고삐를 늘 몸에서 떼지 말라 했고(鞭索時時不理身) / 두렵구나, 멋대로 걸어 티끌 세계 들어갈까(恐伊縱步入埃塵) // 소를 잘 길들여서 더 온순하게만 기른다면(相將牧得純和也) / 고삐를 잡지 않아도 저절로 사람 따르리(羈鎖無拘自逐人)]라고 했다.

【한자와 어구】
馴治: 순하게 길 들이다. 飼養: 사육하다. 盡功身: 몸을 다 바치다. 野性: 야성. 恐生: 생겨날까 두렵다. 摩定塵: 손으로 만져 진정시키다. // 不待: 기다리지 않다. 常時: 항시. 順順也: 순순하게 길 들이다. 無拘: 구애됨이 없다. 鎖强: 강제로. 自隧人: 스스로 사람을 따른다.

 
저작권자 © 광양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