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곤(한국수필회원)

어메니티(amenity)는 어떤 지역의 장소, 환경, 기후가 주는 쾌적성 그리고 아름다운 경관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따뜻함을 포함하는 미(美), 쾌(快), 감(感), 청(靑), 등으로 표현되면서 친근하고 평온함을 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청결한 환경보전, 좋은 인간관계, 자연과의 공생 등 인간이 추구하는 다양한 가치, 한 마디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종합적인 쾌적함”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도가사상에서 자연과 인간의 합일(合一)을 중요시한,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처럼 겸손하게 자연에 순응”하라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심오함도 엿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 다음으로 인간에게 따뜻함을 주는 위대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섬진강(蟾津江)은 전라북도 진안과 장수의 팔공산에서 발원해서, 남쪽으로 유유히 흐르다 백두대간의 화룡점정 지리산과 호남정맥의 끝자락 백운산 사이를 헤집고, 오백오십 리(220km)의 긴 여정을 광양만을 통해 남해(南海)에 내려놓는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마한과 변한의 영역이었고, 이후 백제에 편입되어 신라와 한때 국경을 이루었다. 
  고려 시대(우왕 11, 1385년) 왜구들의 노략질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한꺼번에 울부짖어 그들이 도망갔다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 자를 붙여서 섬진강이라고 불렀다 한다. 
조선 시대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왜군들의 잦은 침략으로 약탈과 수탈의 지난(至難)한 세월을 백성들과 함께했다. 
결국은 질곡의 일제강점기를 치르고 굴곡진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대한민국 5대강의 큰 하천이다. 특히 전남 광양과 경남 하동이 양분하고 있는 중하류 약 백 리 (40km)는 웅장한 강의 위용을 천하에 뽐낸다.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과는 달리, 섬진강은 먼 옛날에는 국경인 적도 있었고 지금은 영, 호남이 경계를 이루고 있다. 
오랫동안 분열과 대결의 아픔을 간직한 애잔한 강이다. 언제나 강을 사이로 두 지역이 불편한 관계에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동쪽은 영남의 변방이고, 서쪽은 호남의 변방이다. 
8.15해방 후, 헤게모니 쟁탈의 희생양으로 여수, 순천 10.19 사건이 일어난다. 
제주 4.3 사건의 진압을 거부한 여수 14연대 주축의 무리는 결국 빨치산으로 귀결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잉태한다. 
격동의 시절, 수많은 무고한 양민이 학살된 보도연맹 사건 등과 함께 당시 정권의 야욕이 불러온 이데올로기 대참사였다. 
남부군 빨치산의 대장정(大長征)이 시작되었고 그 중심에는 섬진강이 있었다.
섬진강은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인 대하(大河)소설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박경리의 토지 그리고 김동리 역마의 주요 배경이었다. 
민족시인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육필 원고를 마룻바닥에 감춰서 일제로부터 숨겨온 정병욱 가옥이 섬진강가에 있고, 독립운동가이면서 공산주의자인 빨치산 사령관 이현상이 사망하자, 시신을 거부한 가족을 대신해 토벌대장 차일혁 총경이 사상은 달랐지만, 그의 평소 인간성에 경의를 표해 정중하게 장례를 치러준 곳 또한 섬진강변이었다. 
섬진강은 오랜 세월 이념의 혼돈 속에서 역사적, 지리적으로 민족의 한(恨)을 고스란히 품은 애수(哀愁)의 강이다. 
백두대간의 눈물처럼 푸르게 흐르는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의 변방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쾌적한 자연환경을 간직한 채 영원히 흐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각종 개발에서 뒷전으로 밀려나고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떠나면서 그 황량함과 공허함만이 현재의 섬진강 신세를 대변하고 있다. 
급기야 이농, 고령화 등으로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강변 마을은 지역소멸의 위기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다.
  인생지사(人生之事), 세상사(世上事)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누가 말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섬진강 유역은 저개발로 인해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아름다운 풍경과 순박한 인심 등 친자연적인 생태계와 따스한 인간미를 간직함으로써 최고의 어메니티 조건을 갖추었다. 
산업시설이 거의 없고 인구도 적어서 오염 물질의 배출이 근원적으로 차단되면서 자연스럽게 태고(太古)의 숨결을 어느 정도 유지한 것이다. 가장 낙후된 섬진강이 가장 천연스러움으로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는 바야흐로 전국 제일의 힐링캠프로 발돋움하고 있다. 
  섬호(蟾湖)에 물안개가 아련히 피어오른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하동과 광양을 가로지르는 섬진교 위에 쌍무지개가 떠 있다. 
섬진강에 좋은 일이 있으려나 보다. 그 위로 흰 구름 먹구름이 자유롭게 떠다닌다. 
국경도 이념도 지역감정도 없는 구름이 부럽다.
“너 홀로 둥실둥실 떠나가려나! 말해 다오 말해 다오! 구름아 너의 갈 곳 어디!” (딕 훼밀리  흰 구름 먹구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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