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양마을은 이전에 옥곡초 죽양분교가 있었으나 폐교되고 지금은 그 자리에 광양시 노인전문요양원이 들어와 있다. 마을전경과 수양천, 노인전문요양원 등의 모습

백양마을은 옥곡 대죽마을과 수평마을을 잇는 대치길 북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는 수평천이 흐르고 뒤로는 크고 작은 동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전형적인 시골마을의 아늑함이 묻어난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가에는 사계절 모습을 달리하면서도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는 300년 된 보호수가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고 있다.

■두 개의 마을이름 유래
백양마을은 1480년경 해주정씨(海州鄭氏)가 처음 이곳에 정착했다고 전하는데, 마을 입구 언덕 주변에서 구석기시대 유물인 주먹도끼가 출토돼 지금부터 약 1만 년 전에 이곳 부근에서 사람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백양마을 이름은 주민들 사이에 두 가지 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하나는 마을 뒷산의 지형이 흰염소(白羊)가 누운 형국이라 하여 그대로 백양(白羊)이라 부르다가 동음이지만 뜻이 변한 백양(白楊)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고, 또 다른 설은 배(船)를 매기에 아주 좋은 형국이라 하여 ‘배형동(船形洞)’이라 하다가 마을 동쪽 산이 백양목(白楊木)이라 하여 백양(白楊)으로 이름을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두 가지 설이 있긴 하지만 이들 모두 마을 전체가 바른 터에 자리 잡아 동·식물이 잘 자라는 마을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옛 문헌상 기록에 의한 백양마을의 이름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백양촌(白楊村)→백양리(白楊里)→백양리(白羊里)→백양(白楊)으로 변화되었으며, 백양(白楊)을 백양동(白楊洞)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해진다.

■죽양분교가 있었던 마을
백양마을은 이전에 옥곡초등학교 죽양분교가 있었지만 1996년에 폐교되면서 그 자리에는 2007년 4월에 개원한 광양시 노인전문요양원이 들어와 있다. 
이 요양원은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수용인원이 60명에 이르며 의무실, 간호사실, 물리치료실 등이 마련돼 있는데, 급격한 고령화 사회에 따른 어르신들의 치매, 뇌혈관성 질환 등을 개인이나 가정의 부담으로 머무르지 않고 관내의 다양한 복지수요에 알맞은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설립됐다.
또 백양마을 안쪽에는 옛날 옥천사(玉川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경상도 경주로 옮겨갔다고 한다. 
지금도 마을 안 골짜기를 뜻하는 ‘부채골’, ‘불당골’에는 옛 절터가 남아 있는데 왜정시대 때 일본인들이 이곳에 남아 있던 유물을 가져갔다고 전하고 있다. 
옛날 대죽리에 절이 많이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그 당시 절에서 차(茶)를 많이 심어서인지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작설차(雀舌茶)를 구하러 오는 사람들이 이 마을을 많이 찾았다고 전한다.
마을 백양천 바위 위에는 양천조대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동우라는 사람이 그의 아버지가 여기서 낚시를 하였다는 사실을 기리기 위하여 새겼다고 전해지지만 최근 이 지역에 집이 들어서면서 그 흔적은 사라졌다. 
백양마을회관은 2018년에 새로 신축했는데 이전의 마을회관이 30여 년 전에 건립돼 시설이 노후되고 협소할 뿐 아니라 화장실이 외부에 위치하는 등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는데 불편을 겪어 왔다. 지금은 마을회관에 남・여 경로당, 주방시설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면서 주민들이 편하게 머무를 수 있게 됐다.

양재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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